172. 이 여름의 산보 20240823
올여름은 뜨겁습니다. 말복이 지나 가을빛이 저 멀리 보이겠지 했는데 며칠을 두고 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처서가 지났으니 가을빛이 돌겠지 했는데 눈부신 햇살에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기색이 없습니다. 낯이나 밤이나 습하고 후끈거리는 공기는 바뀔 줄을 모릅니다. 며칠 전 태풍 ‘종다리’가 필리핀 근처의 바다에서 북쪽으로 향했다는 보도에 이제는 더위도 한풀 꺾이겠구나 했는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나라로 오기는 했는데 열대성 저기압으로 바뀌면서 공기의 흐름을 바꾸어 놓지 못했습니다. 남해안에 많은 비를 뿌렸지만 이 습한 공기가 더위를 물리치기는커녕 지속시킬 것이라고 합니다.
종다리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던 날 밤잠을 설쳤습니다. 무더위에 잠들기가 어려웠는데 졸음이 밀려오는 순간 요란한 빗소리와 함께 활짝 열린 창문이 요동쳤습니다. 일어나기 싫은 몸을 일으켜 창문을 닫았습니다. 공기가 이동하지 않자 실내는 금방 후텁지근하다 못해 겨울철 장작불을 땐 사랑방의 아랫목처럼 뜨겁습니다. 타협을 해야겠습니다. 창문의 위쪽을 비스듬히 열었습니다. 활짝 열면 좋겠지만 바람이 빗줄기를 방안으로 사정없이 밀어 넣을 겁니다. 바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울부짖습니다. 단단히 골이 난 모양입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빗줄기를 창문을 향해 쏟아놓습니다. 창문을 넘어 들어온 바람이 되돌아갈 수 없게 되자 현관문을 밀어냅니다.
‘부우웅, 부우웅’
있는 힘을 다해 밀어내는지 잠긴 현관문과의 씨름을 합니다. 문도 힘이 드는가 봅니다. 바람소리에 맞서 문 떨림이 누워있는 등짝을 울립니다. 잠자리가 편 할리 없습니다. 얼마를 뒤척였을까. 곧 바람은 빗소리와 함께 숨을 죽였습니다. 종다리는 우리나라에 접근하자 열대성 저기압으로 바뀌었답니다. 다행입니다. 태풍이었다면 밤을 꼬박 새워야 했을지 모릅니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지만 몸은 천근만근입니다. 잠을 잔 것인지 꿈을 꾼 것인지 잠시 비몽사몽입니다. 아내의 식사 성화에도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이 여름에는 내가 좋아하는 산보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예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내려 꽂히는 햇살은 내 목덜미와 가슴에 땀 세례를 퍼붓습니다. 강한 햇볕은 내 눈꺼풀을 내리게 했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여름의 한 더위, 해마다 올해만큼 더웠던 해가 있었을까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지난 일은 현재에 비해 잊기가 쉬운가 봅니다. 날씨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올해의 더위는 기록 이래 첫 번째라느니 두 번째라느니, 서열을 매기기를 좋아합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올해의 열대야 일수는 예전의 기록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내가 그 기록을 찾은 일이 없고 찾기도 어려우니 우선 믿기로 했습니다. 더위를 느끼는 만큼 믿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여름 산보 대신에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하기로 했습니다. 해가 뜨기 전 집 앞의 놀이터에서 혼자 공놀이를 하거나, 오후에 아내와 탁구장에서 공을 사이에 두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택했습니다. 연습을 끝내고 모처럼 아내와 나무 그늘을 찾았습니다. 태풍과 비의 영향인지 잠시 바람기를 느낍니다.
“오늘 같으면 여름치고 살만하지.”
“그러게요.”
잠시 벤치에 앉아 호수의 물을 바라봅니다. 징검다리로 사람들의 왕래가 가끔 눈에 들어옵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양산을 받쳐 든 사람,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중년 남자,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굽이 높은 신발을 신은 채 찬 음료수를 입에 물고 조용히 호숫가를 걷는 아가씨, 개의 헐떡임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줄을 당기며 앞서가는 여인,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앞세운 채 꼬마의 앙증맞은 가방을 둘러멘 뒤따르는 남자……. 어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비해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진 편입니다. 구름 낀 날 1·2도의 풍경이 빚어낸 모습입니다.
시골에서의 유년기 시절입니다. 소 풀을 뜯기고 해 질 녘 동네 어귀에 들어섰을 때입니다. 논에서 피사리하던 동네 어른이 바수거리에 꼴을 얹으며 말했습니다.
“여름 해가 참으로 길지!”
내가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해는 동그란데요.”
아저씨가 ‘쿡’하고 웃음이라고 여길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동그래서 온종일 구르다 보니 열을 받은 게로구나.”
올해의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요. 아저씨의 말처럼 해가 구르고 구른 지 몇 해입니까. 해마다 지금보다 더 더워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더위를 잠시 잊으려면, 아니 땀띠를 막으려면 곧 등목이라도 해야겠지요.
올여름 산보는 잊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