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책을 받다 20240823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중 잠시 까딱하고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무더위가 계속되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까, 아니면 전날 속이 좋지 않아 일어난 일일까. 체한 것을 모르고 어지럽다는 느낌이 있어 더위 탓이라고 여겼습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후속 모임을 갖으려고 합니다. 다음 주, 늘 모이는 날의 그 시간입니다.’
알림 소리에 퍼뜩 숙여진 머리를 들었습니다. 창피하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봅니다. 많은 사람이 있지만 나에게 시선을 돌린 사람은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시간이 지났어도 수강생의 반응이 없습니다. 평일이라서 각자 하는 일로 바쁜지 모릅니다. 아니 찜통더위이고 보니 나들이 자체를 꺼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복지관에서 수업이 끝난 후 도서관에 들렸습니다. 참석을 하지 못하는 분은 책을 찾아가라는 문자가 아침에 떴습니다. 모이기로 한 날짜에 가겠다고 했지만 새로 나온 책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안내 창구에서 내 이름과 책 이름을 대자 사서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더위에 수고하셨다는 인사말을 건넵니다. 여러 해 근무를 하다 보니 도서관에서의 내 행동반경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고 책을 수시로 빌리기도 하지만 독서, 인문학, 미술, 음악에 관한 강의를 듣습니다. 또 다른 분야도 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다 보니 에세이, 소설, 시의 창작활동과 그림책 만들기에도 참여합니다. 해마다 내 이름이 실린 몇 권의 책이 손에 들어옵니다. 문집이라고 할까요. 이중 그림책은 오롯이 저자의 이름이 나 하나뿐인 결과물입니다. 여러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이 손에 들어왔습니다. 동료 수강생들에 비해 그림의 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용만큼은 앞선다는 느낌입니다. 자화자찬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나의 기분은 하늘을 날 수 있을 만큼 기쁩니다. 해냈다는 성취감일지 모릅니다.
이삼일이 지나도 후속 모임의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날짜를 몇 개를 정해 놓고 투표로 정하기로 했지만 참여율이 저조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더위와 각자 바쁜 일정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잠시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우리를 지도해 주었던 작가분이 다른 바쁜 일로 시간을 낼 수 없답니다. 우리끼리의 모임이니 자축이라고 하지만 의미가 다소 퇴색되는 느낌이 듭니다.
책을 받아 들자 옆 휴게실에 앉아 표지를 살핍니다. 이 한낮의 더위에 다소나마 열기를 식혀줄 그림입니다.
「첫눈 오는 날」
세 아이가 신나게 눈을 향해 다가갑니다.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립니다. 느낌만으로도 땀을 식혀줄 것만 같습니다. 속표지를 열었습니다. 한 아이가 부지런히 하늘에 점을 찍습니다. 눈입니다. 그 아이는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나입니다. 내가 그림책 속의 어린이입니다. 내용을 구상할 때부터 나는 어린아이였습니다. 동심의 세계에 빠져 노인이라는 생각을 잊었습니다.
‘눈밭을 뛰어다니는 노인, 눈밭에서 뒹구는 노인, 눈밭에서 몸을 털썩 뉘고 눈 사진을 찍는 노인.’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반대로 어린이라면 어떻습니까. 답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그림책에 빠져드는 이유입니다. 그동안 몇 권의 그림책을 완성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들레」, 「소풍」, 「눈 오리의 겨울나기」, 「첫눈 오는 날」
책으로 완성되는 않았지만 그밖에 더미 북으로 만들어져 원화 작업을 하는 작품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동안 틈틈이 글을 쓰는 기회를 가졌지만 정작 내 이름으로 발간되는 책이 나오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름난 작가들만 책을 만들어내는 줄 알았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 하나의 책을 펴낸다는 일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글을 쓰고 책을 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음악 미술을 비롯한 취미 활동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된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나이를 먹어도 무엇인가 배우려는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발표회나 전시회도 많아집니다.
책을 들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더위 냄새가 ‘푹’ 얼굴을 향해 달려듭니다. 코끝이 후끈합니다. 하지만 손은 가볍습니다. 책으로 태양을 가립니다. 책의 또 다른 쓸모도 있군요. 정수리로 따끈하게 다가오는 햇살이 표지 위에서 놉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천천히 책 표지의 눈이 서서히 녹을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에는 여름이 좋아요 라는 내용으로 더미 북을 만들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