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뒤틀림 20240820

by 지금은

평생학습관에서 한 때 글쓰기 공부를 함께 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마주쳐서인지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인데 하고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녀가 먼저 아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낯익은 분인 것 같은데, 으음.”


“저도 그래요.”


잠시 생각을 하다가 ‘혹시’ 하고 장소를 대자 알겠다는 듯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함께 강의를 듣는 대학 캠퍼스는 그녀가 찾아오기에는 다소 멀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찾아간 학습장도 그만큼 멀었기 때문입니다. 학습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중도에 그만둘 뻔했습니다. 전철을 갈아타고 다시 이십여 분을 걸어야 했습니다. 시간을 빼앗기는 대신 알찬 내용을 얻어간다는 마음에 싫증을 내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구내식당을 찾았습니다. 이 대학의 학생들이 먹는 점심은 어떨까 하는 궁금합니다. 대학과 마주하고 있는 노인복지관에도 식당이 있습니다. 강의를 듣기 위해 들릴 때마다 이용합니다. 저렴하지만 한 끼의 식사로 만족합니다. 내가 식당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있을 만한 곳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그녀가 다가와 위치를 말하며 인도했습니다. 문을 들어서자 식당 입구에 키오스크가 있습니다. 그녀가 기계에서 식권을 구입하며 내 것도 함께 지불하려고 하자 만류하며 신용카드를 꺼냈습니다. 식권을 터치하고 카드를 단말기에 넣었는데 반응이 없습니다. 몇 차례 시도했지만 카드를 읽어내지 못합니다.


‘오류라는군요.’


인식이 왜 안 될까? 하고 의아해하며 건너편에 있는 노인복지관으로 향하려는 찰나 그녀가 식권을 내밀었습니다. 자신의 것은 이미 손에 들려있습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어쩌겠습니까. 다음 강의를 받는 날 대신 밥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식권을 받아 들고 잘 먹겠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카드가 오류를 일으키기는 처음입니다. 카드의 오류인지 키오스크의 오류인지는 모릅니다.


오늘은 뒤틀리는 날인지 모릅니다. 길이 너무 익숙해서일까요. 얼마를 걷다 보니 낯선 곳에 있습니다. 아파트를 끼고 오르는 산 중턱길입니다. 두리번거렸지만 위치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발을 멈추고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등교를 위해 아이와 엄마가 학교를 향해 다가옵니다.


“방향을 잃었습니다. 대학교로 가려면.”


아이 엄마가 가리키는 곳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뒤를 돌아보니 나를 따라옵니다. 초등학교가 저만큼 보입니다. 고마운 마음에 어젯밤에 접어놓은 종이비행기를 가방에서 꺼내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아이보다 엄마의 표정이 더 밝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관심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글쓰기입니다. 그의 이야기보다는 내 말이 더 많았습니다. 그동안의 활동상황입니다.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책을 발간한 것들입니다. 말을 주고받는 동안 생각해 보니 동회원의 글이 함께 실린 문집을 여러 권 펴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은 일 년에 한 권 정도 만들었습니다. 칭찬을 받으려고 한 말은 아니지만 몰입의 결과가 아니냐며 다소 부러워하는 눈치입니다.

오늘 듣는 강의 외에 더 하는 것이 있느냐기에 시 강의를 듣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강의를 듣고 시를 써보았지만 마음 갖지 않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시가 어렵다고 하기에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렵다며 일본 작가 ‘시바다 도요’에 관해 말했습니다.


‘글감 찾기를 어려워하지 마라. 크고 대단한 것을 찾기보다는, 작지만 소소한 것을 관찰하고 깊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밖의 몇 가지를 더해서 말했습니다. 사실 이 말은 나의 생각이기보다는 책이나 다른 강사의 말을 인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어주어서 이야기기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시바다 도요의 시세계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했다는 데 있습니다. 일상의 행동, 일상의 언어가 시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녀의 추임새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했습니다. 시 한 편을 천천히 낭독하는군요.


‘바람과 햇살과 나’/ 시바다 도요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오늘의 강의도 재미있지만 내 이야기가 더 좋았답니다. 다음 시간에도 꼭 참석하라는 말을 남기고 정류장을 향해갑니다. ‘그럼요’ 하며 힘주어 말했습니다. 오늘의 점심 갚아야겠지요.

집으로 돌아와 사정을 말했을 때 아내가 말했습니다.


“신용카드가 두 장이나 있었으면서 다른 하나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아차,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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