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기타를 만지다가 20241018

by 지금은

오래전 버킷리스트에 넣어두었던 기타입니다. 햇수로 쳐보니 퍽 오래된 일입니다. 유효 기간은 무한정이어서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처음 순위를 정할 때 세 번째 목록으로 여겼는데 어쩌다 보니 다른 것에 비해 순위가 계속 밀려납니다.


내 나이 열다섯 살 무렵입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기타를 옆구리에 낀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비록 연주 솜씨는 서툴지만 만족해하는 표정에 나 또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기타를 손에 넣은 지 불과 한 달 정도이니 그의 말처럼 노력을 많이 했다는 증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방학 동안 밥 먹고 잠자는 일 외에는 기타를 안고 살았어.”


잘 모르지만 기타 줄을 옮겨가며 짚는 그의 손가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왼손가락 끝이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한 번 만져볼래?”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아보고 싶었지만 몸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기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스무 살 무렵입니다. 그 시절 ‘포크송’이 붐을 이루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야유회를 갔는데 가타가 빠질 수가 없습니다. 동료들 몇 명이 돌려가며 기타를 안고 노래를 하는데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습니다. 반주에 맞추어 동료들이 떼창을 했습니다.


“한 곡 튕겨보지 않으시겠어요.”


후배 아가씨가 기타를 내밀었지만 받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며칠 후 용돈을 확인하고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 기타를 마련했습니다. 그날부터 피나는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혼자 습득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모르는 것은 어깨너머로 습득을 하다 보니 진전이 느립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릴 때 다친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줄을 반대로 바꾸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열기가 식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리듬, 박자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기타는 내 곁을 떠났다 가끔 다시 찾아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 얼마의 거리를 두고 내 곁을 맴돕니다.


작년에는 기타 조율기를 샀습니다. 풀어놓은 기타 줄을 조여 음을 맞추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음감이 부족한지 각각의 음을 찾는 게 힘듭니다. 조율을 했지만 음이 맞지 않는다고 아내가 지적을 합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종종 있는 일이고 보니 조율기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기타는 내 곁을 잠시 머물다 다시 멀어지곤 합니다. 조율기의 도움이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문제이겠지요. 잊을 만하면 다시 손에 잡았다가 며칠 되지 않아 방의 한 구석으로 밀어냅니다. 나는 외양이 낡아 가는데 기타는 아직도 처음 나를 만나던 날처럼 깔끔한 모습입니다.


연주자는 악기를 연주하기 전에 늘 조율을 합니다. 기타뿐만 아니라 현악기 건반악기를 비롯한 모든 악기는 점검을 하게 마련입니다. 조율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소리가 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연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물론 청중이 원하는 음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해마다 10월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채로운 축제가 열립니다. 우리 고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공원에서 음식축제가 열렸습니다. 어느 축제든 대부분 빼놓을 수 없는 게 연주회나 노래자랑입니다. 공연을 잠시 관람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옆에 있는 수목원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예전에 숲을 거닐다 우연히 발견했던 피아노 때문입니다. 지붕을 우산처럼 받쳐 들고 야외 마당에 동그마니 앉아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사용하셔도 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안심이 됩니다. 연주 솜씨는 부족하지만 동요를 한 곡 쳐보았습니다. 홀로 만족합니다. 아니 숲의 동식물들이 잠시 기쁨을 누리지 않았을까요. 나만의 상상입니다. 이번에도 피아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햇빛과 바람 때문인지 외양이 좀 거칠어졌습니다.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때 그 자세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같은 곡입니다. 숲 속에 피아노 소리가 번집니다. 훌륭한 연주자처럼 야외에서 한 곡조 칠 수 있다니 만족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음이 이탈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내 손가락은 제자리를 짚은 게 분명합니다. 조율이 되지 않았군요. 진짜 음악 발표회라면 어떠했을까요.


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려면 늘 관리가 필요하듯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삶을 잘 이어가기 위해서는 계획은 물론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몇 개의 항목이 들어있습니다.

‘하루 책 100페이지 이상 읽기, 글 한 편 쓰기, 40분 공차기, 10분 이상 악기 다루기, 그림 그리기, 미소 짓기.’

그동안 바뀐 것도 있습니다. 담배 끊기, 폭식하지 않기, 자전거 타기, 수영하기 등, 이런 것은 실천했기에, 대체됐기에 바뀌었습니다.


‘십 년 몰입, 또는 만 시간의 법칙’


누군가 말한 이런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는 순간입니다. 내 결과물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눈앞에 보입니다. 책 읽기,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가 그 예입니다. 기타를 다시 매만집니다.


‘정이 부족했나 보구나.’


삶이란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살아집니다. 생각 없이 산다 해도 계획을 세우고 산다 해도 삶이란 단어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르다면 다만 만족감이겠지요. 기타의 조율처럼 준비된 삶은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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