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새로운 발견은 아니지만 20240916
가을답지 않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마다 추석이 가까워질 즈음이면 긴팔셔츠 생각을 떠올리는 올해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어는 더위에 열대야를 겪고 있지만 하늘은 사람이나 동식물들의 마음은 아량 곳 하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뿜어댑니다. 한 밤중에도 새벽녘에도 선풍기를 돌려야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차가운 음료를 싫어하지 않는 나이지만 올 더위만큼은 이겨내기 힘들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는 사이에 손이 갑니다.
며칠 전 형님 내외분을 뵈러 갔습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지요?”
“아뇨, 차가운 것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더운 음료가 내 입맛을 알고 있습니다. 올여름에는 더운 음료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견뎌내는 게 있습니다. 아침 운동입니다. 몇 해 동안 이어져온 공차기는 습관으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킵니다. 이 나이에 무슨 축구냐고 하겠지만 남과 어울리는 활동은 아닙니다. 그저 밖으로 나가면 늘 정해진 곳에서 벽으로 향해 공을 찹니다. 부딪치는 공은 돌아오는 습성이 있으니 혼자 공을 차도 누군가와 마주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말없는 벽이지만 내 마음을 잘 헤아려 줍니다. 발길질이 앞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벽은 다른 마음을 갖지 않고 내 앞으로 공을 정확히 보내줍니다. 벽은 내 발길질과 동일한 상태로 나에게 대합니다. 발길질이 빗나가기라도 하면 벽은 틀림없이 그만큼 변화를 줍니다.
사람과 사람사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상대에게 다가가는 만큼 그도 다가오고 내가 베푼 만큼 그도 베푼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자성어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가게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은 어떨까요.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꾸준한 새벽 운동이 일정 부분 나의 몸과 마음을 서서히 변화시켰습니다. 알게 모르게 다소나마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몸의 불편함이 조금씩 줄어드는 듯했는데 마음 역시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 찾아왔습니다. 엊그제 병원에서 피검사와 오줌 검사를 했습니다. 다음날 결과를 확인했는데 생각 외로 상황이 호전되었다는 말에 나 자신에게 보다는 의사에게 말을 흘렸습니다.
“고맙습니다.”
나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을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다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어찌 되었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몇 해 동안 먹어야 했던 고지혈증 약을 끊게 되었습니다. 당뇨약도 수치를 낮추게 되었습니다. 이도 정상에 근접하는 상황입니다. 남에게는 자랑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내에게는 그동안 몇 차례 말했습니다. 매일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공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습관입니다.
“500번 찼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했습니다. 하지만 이 더위에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400번으로 움직임이 줄어들다가 요즘에는 300번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운동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강도가 조금 낮아졌을 뿐입니다. 대신 공을 상대로 발놀림을 대신했습니다. 축구선수들의 발재간을 보면서 흉내를 내본다고 해야 할까요. 공을 뻥뻥 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공을 다루는 발재간도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해야 할까요. 성장기에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늘 뒤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사람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달리기, 공차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놀이입니다. 후보군에도 끼지 못했던 지난날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어디서나 어느 곳에서나 모든 면에서 나는 보통사람임을 자부합니다. 생각을 생각으로 끝내지 않고 그곳에 다가선 때문입니다. 백과사전의 책이 되기 위해 마음을 기울였고 마음에 두는 것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관찰과 몰입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변함없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제 낮부터 쏟아지는 소나기는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밤새 내렸습니다. 바닥이 젖어있습니다. 발끝을 떠난 공이 물방울을 튀기며 앞으로 나갑니다. 물기가 적은 바닥으로 골라 공을 굴립니다. 내가 찬 공이 공교롭게도 마당을 벗어나 보도블록으로 굴러갑니다. 마침 산책을 하기 위해 지나가던 여인과 마주쳤습니다. 발길을 멈추자 밀려난 공을 나를 향해 찼습니다. 헛발질을 했군요. 다시 또 헛발질을 했군요. 슬리퍼 차림입니다. 세 번의 발놀림으로 공을 겨우 내 앞으로 밀어냈습니다. 멋쩍은 듯 눈 맞춤을 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목례를 하며 순간 나도 미소를 지었습니다.
어제 만난 아기의 발길질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들이 뭐 평소에 공을 차본 일이 있겠습니까. 몇 년을 두고 차는 나도 가끔 마당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공을 보내는 일이 있습니다. 국가 대표 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나 깨나 공에 관심을 쏟는 그들이지만 상대에게 공을 빼앗기거나 종종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공을 잘 못 찼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주눅 들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꾸준히 하다 보면, 열심히 노력하면…….이라는 말로 아침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오늘, 한 번의 헛발질 별거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