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소문난 잔치 20241026
179. 소문난 잔치 20241026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옛 속담이 생각나는 하루입니다. 며칠 전 10월의 축제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정동길 축제'가 눈에 확 뜨였습니다. 여러 곳의 축제가 있지만 덕수궁 돌담길이 문득 머리에 떠오른 때문입니다. 작년 가을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운 단풍이 눈에 선합니다. 낙엽 흩날리는 거리를 걷는다는 게 쓸쓸한 마음으로 다가올 것만 같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은 일요일이라서 일까요. 곱게 물든 단풍이 바람 따라 파란 하늘에 일렁입니다.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아름다운 곳에는 인파가 모이게 되어있습니다. 쌍쌍이. 삼삼오오. 또는 한 무리의 사림이 환한 웃음을 흘리며 돌담길을 따라 오갑니다. 가끔 외로워 보이는 사람도 보입니다.
이런 곳에는 음악과 그림이 빠지면 서운할 수도 있겠지요. 거리의 화가가 화판을 펼쳤습니다. 거리의 악사가 멋진 음악을 선사했습니다. 어깨에 내린 단풍잎이 무거운 줄 모르고 많은 사람이 선율에 빠져들었습니다.
'나는 어떠했을까요.'
나는 그 연주자의 손끝에 빠졌습니다. 막 자리를 잡았을 때 '10월의 어느 날에'의 곡이 마지막 한 소절이 귓전을 울립니다. 아깝습니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순간입니다. 악사의 선율에 마음을 내맡기며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요. 아내가 잡아끄는 손에 이끌려 일어나기 전까지 한 시간 남짓 머물지 않았을까 합니다. 손이 호주머니로 향했습니다. 아무리 거리의 음악이고 공짜라고 해도 작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아내가 지폐를 보는 순간입니다.
“웬일이에요.”
“오랜만에 생음악을 감상하게 돼서…….”
우리는 해마다 코로나가 사람들 사이를 떼어놓기 전까지는 몇 차례 이와 비슷한 연주를 종종 감상했습니다.
내가 가끔 이곳을 찾는 이유는 아내와 결혼을 며칠 앞두고 거닐었던 추억 때문인지 모릅니다. 가을비가 안개를 몰고 내리던 날입니다. 내리는 듯 마는 듯 부슬비는 고운 낙엽을 바닥에 찰싹 붙여놓았습니다. 호젓한 길을 따라 말없이 걸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신경 써서 우리를 관찰했다면 어땠을까요.
‘혹시라도 다툰 것 아니야.’
남의 말을 들어보면 결혼을 앞두고는 대부분의 사람이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만나 함께 살아가야 할 날에 대한 기대, 혹은 두려움 때문일지 모릅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큰 기대나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잠시 마음이 착잡했을지 모릅니다. 날이 개이자 날씨처럼 마음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하는 말입니다.
이후로 서울나들이를 하고 싶을 때면 종종 덕수궁과 돌담길. 광화문, 인사동, 북촌을 비롯한 주변을 걷습니다. 언제 찾아가도 계절에 관계없이 맞아주는 모습들이 기분을 좋게 합니다.
오늘도 덕수궁 돌담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축제의 날이니 왁자지껄해야 할 것 같은데 조용합니다. 인파는 그대로인데 왠지 전과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연주 음악이 들려야 할 터인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잘못 찾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날짜를 잘못짚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발짝 두 발짝 발을 옮기지만 주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외에는 바람소리조차 없습니다. 잠시 몇 걸음 옮기자 낯선 풍경이 보입니다. 돌담 바로 밑을 따라 작은 좌판이 보입니다. 길게 줄지어 늘어섰습니다. 소품을 파는 가게입니다. 액세서리를 비롯하여 크기가 작은 일용품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좀 지나치자 아이들을 위한 체험 코너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아내가 실망이라도 한 듯 내 소매를 잡아끕니다.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내 생각처럼 멋진 축제를 기대했는데 어긋났다는 마음인지 모릅니다.
“오늘은 음악 감상도 못하게 되었구먼.”
좌판이 줄지어 자리를 차지한 때문에 다른 공연자들의 설 곳이 마땅치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에게는 차라리 평소의 일요일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정동 길을 벗어났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더니만, 다른 곳으로 발길을 들여놓을 걸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하루입니다.
다행이라면 우리가 덕수궁 앞의 대한문에 이르자, 때맞춰 수문장 교대식이 이루어졌습니다. 전에도 보았지만 오늘은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의식을 다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덕수궁 내의 돈덕전(惇德展)을 관람했습니다. 일제 침략기 늑사조약의 원문을 읽어보고 실내에 게시된 1900년대 그 시절의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둘러보았습니다. 국력에 의한 불평등 조약을 되새겨볼 때 우리의 자주국방은 어느 때보다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시루떡 대신 인절미 하나, 먹은 셈 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