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연날리기 20230212
‘액(厄) 막이 액(厄) 막이.’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우리 집의 나쁜 기운일랑 네가 멀리멀리 가져가거라.”
할머니가 연이 높이 오르면 연줄을 끊으라고 했습니다.
겨우내 날리던 연입니다. 정월 열나흘이 되자 연을 가지고 동구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제는 보내주어야 합니다.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더 날리고 싶지만, 내일부터는 연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는 어른들의 말씀입니다. 계속 날리면 나쁜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이야 연날리기를 놀이로 하지만 옛날에는 놀이보다는 군사적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연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니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47년 신라 진덕여왕을 반대하는 일부 대신이 반란을 일으켜 김유신(金庾信)이 토벌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성안으로 별똥이 떨어져 군사들이 두려움에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장군은 꾀를 내어 불을 붙인 허수아비를 연에 달아 하늘로 띄웠습니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소문을 냈습니다.
“어제저녁에 떨어진 별이 하늘로 다시 올라갔으니,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연을 사용했다고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하여 조선 말기의 기록에는 연의 종류, 연 만드는 법, 연 띄우기 풍속 등이 자세히 소개된 것을 보아 점차 연날리기를 오락으로 삼게 되고, 그것이 민속과 결합하면서 명절에 날리는 풍속으로 전해져 오게 되었습니다.
연을 날리는 시기는 대부분 초겨울에 시작해서 이듬해 추위가 가시기 전에 끝났습니다. 본격적으로 연을 날리는 시기는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 전까지였으며 이후에는 더 이상 연을 날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보름이 지나서도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이라고 놀렸습니다. 고리백정은 갈대로 바구니 같은 그릇을 만드는 사람으로 천민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신분 사회였던 조선에서 천민은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는 훈계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농사 준비에 소홀하지 않을까 염려에서 나온 말이라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연은 방패연과 가오리연으로 방패는 사각형으로, 이는 땅을 상징합니다. 또한 방패 자체로 액을 물리는 도구이자 상징물입니다. 따라서 방패연을 띄우는 것은 땅의 기운을 하늘에 실려 보내는 것을 뜻하며 나쁜 것을 쫓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가장 대표적인 연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방패연만 날렸습니다. 가오리연을 구경한 것은 내가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을 때입니다. 연뿐만 아니라 가오리 구경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산촌에서 유년 시절을 지냈으니, 생선이라고는 오징어, 동태, 갈치 정도였습니다.
대보름을 이삼일 앞두고 삼촌이 연줄을 끊어버리라고 했지만 연을 날리지 못한다는 서운한 생각에 미적미적했습니다.
“고리백정이 되지 않으려면 연을 멀리 날려버려.”
열나흘 아침이 되자 할머니의 말씀처럼 삼촌도 같은 말 했습니다.
아침을 먹은 후 연을 들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언덕에서 하늘을 향해 연을 올렸습니다. 오를 생각이 없나 봅니다. 얼레를 가지고 언덕을 달렸습니다. 뜰 것 같던 연이 달음질을 멈추자 설렁설렁 바닥으로 내려앉습니다. 바람이 없습니다. 다시 달리다 숨이 차서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오후에도 날렸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모르는지 하늘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외양간 기둥에 매달려 있는 연을 보고 삼촌이 말했습니다.
“날지 않아서…….”
“이를 어쩌나, 고리백정 되면 안 되는데.”
정말 백정이 되면 안 됩니다. 저녁을 먹는 동안 걱정이 됩니다. 숟갈을 놓자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느새 달이 앞산 위에 올라 나를 바라봅니다. 표정이 없는 얼굴입니다.
다시 연을 올립니다. 늦게 귀가하는 동네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와! 높이도 올랐네, 달을 따도 되겠다.”
순간 나는 연줄을 끊었습니다. 연이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야, 화났나?”
“그만 날리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