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모내기 20230213
‘저 잘린 벼 포기는 아직도 내가 어렸을 때 심었던 것과 다를 게 없네.’
정월 대보름날 쥐불놀이를 하는 논바닥에 줄 서 있는 벼 포기입니다. 밑동이 싹둑싹둑 잘려 나갔지만, 아직도 흔적을 유지한 채 아이들이 발밑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왜 쥐불놀이보다 먼저 눈에 띄었는지 모릅니다. 논의 벼 포기를 보다가 갑자기 모심기가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어제의 글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리백정’
어린 내가 농사일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어제 연줄을 끊었습니다. 유년 시절 정월 열나흘입니다. 마지막으로 액막이 연을 날렸습니다. 새해의 무사 기원과 부지런히 농사 준비를 하라는 뜻입니다
지금의 논농사는 옛날의 농법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쟁기로 논을 갈고, 물이 흥건한 바닥을 고르기 위해 써레가 지나갑니다. 기계의 도움이 없었던 시절은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 일했습니다. 특히 모내기가 이에 속합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는 부지깽이도 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손일지라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논에 들어가 모를 심기 편하게 못단을 옮겨주기도 하고 때로는 못줄을 잡기도 했습니다. 점심을 나르는 아낙네들을 따라 물 주전자를 옮기고 잔심부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때가 되면 시골에서는 농번기 방학이라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모심기 체험학습을 하기 위해 유치원 아이들이 도착했습니다. 잠시 벼의 한 한살이에 대해 공부하고 관해 공부하고 파종부터 탈곡까지의 과정을 사진으로 보았습니다. 한 사람씩 물 논으로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한 아이가 남았습니다. 울음보가 터졌습니다.
“엄마가 더러운 물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괜찮다고 달랬지만 결국 바라보는 것으로 체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아이도 논에 발을 살며시 담갔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옛날의 모내기 모습을 구경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농업에 대한 행사 때 볼 수 있습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영기를 앞세우고 농악대가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논의 못줄 앞에 일렬로 서서 모를 심으며 농가를 선 후창을 합니다.
‘뭐야, 날씨는 점점 더워지려는데…….’
성묘하러 가는 동안 들판을 바라보니 텅 비어있습니다. 예년 같으면 논마다 사람들이 모심을 준비에 바쁠 터인데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군데군데 논바닥을 가는 기계만 보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모내기 준비에 바쁘지?”
“바쁜 거 없어요, 뭐, 기계가 다 하는걸요”
“그렇기는 해도…….”
“우리 논이야 뭐 마음만 먹으면 이틀이면 끝나요.”
기계의 발달은 농업의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소규모 농사에서 대규모의 농법으로 바뀌었습니다. 기계를 이용하면 적은 일손으로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논을 갈기, 바닥 고르기, 모심기, 잡초 제거, 농약 살포, 벼 베기, 탈곡, 볏단 정리까지 모든 일들을 기계의 힘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드론이 병충해 방제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농기계의 발달은 사람들의 힘을 덜고 여유의 시간을 가져왔지만, 대신 옛 정취를 잃어버렸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어린 손이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논에 들어가 피사리를 하던 일,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시기에는 메뚜기를 잡는 재미, 벼 베는 날이면 볏단을 나르며 잔심부름을 하던 일, 탈곡하는 날이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볏단을 날라 짚가리를 쌓던 일 등이 떠오릅니다.
첫 교사 발령을 받았던 때의 학교 생각이 떠오릅니다. 셋째 시간을 알리는 종을 울릴 때입니다. 학교 울타리 밖의 논에서 학부모가 손짓합니다.
“새참 먹으러 오세요.”
“공부시간입니다.”
“매일 가르치는 공부 쉬엄쉬엄하시지요. 지금 점심시간 하면 되지 않겠어요.”
선생님들이 학부모의 손에 이끌리다시피 마지못해 울타리를 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