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48. 스트리킹 20230214

by 지금은

한 여인이 시내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몰렸습니다.


“어, 뭐야, 뭐야?”


옷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더니 알몸이 되었습니다. 스트리킹(Streaking)이라고 합니다. 나는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그를 따라 시선이 옮겨갑니다. 어쩌다 신문이나 방송에 이런 기사가 제공될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가 아니라면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스트리킹(Streaking)은 발가벗고 대중 앞에서 달리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단순히 목욕탕이나 탈의실에서 벗고 있는 것은 스트리킹이라고 칭하지 않으며, 주로 학교나 길거리 등 공공장소에서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스트리커(Streaker)라고 칭합니다. 나체족이 아니어도 일반인들이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어제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한 사람이 스트리킹 했습니다. 역시 그 여인의 모습을 따라갑니다. 눈이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벗은 몸을 좀 더 보기 위해 보조를 맞추어 달려갑니다. 성인의 나체를 보는 일이 쉽지 않으니 벗은 몸에 호기심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112에 신고했나 봅니다. 잠시 후 경찰들이 나타났습니다. 나체의 사람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요리조리 피해 달아납니다. 결국 잡혔습니다. 경찰은 겉옷을 벗어 몸을 가려주었습니다.


‘경범죄 처벌.’


마구 반항하던 사람은 결국 경찰서로 붙잡혀 갔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벌금을 내던지 그도 아니면 얼마간의 구류에 처할 것입니다.


그는 왜 대낮에 옷을 벗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거리를 활보했을까? 자신의 억눌린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정신 이상자의 창피한 모방.’


조선일보의 기사입니다. 1974년 3월 13일 오전 8시 15분쯤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문 앞에서 깜짝 놀랄 만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20대 청년 한 명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차도 한복판 500여 m를 달리다 골목으로 사라졌습니다. 영하 7도의 추위를 무릅쓴 알몸 질주는 출근길 행인 50여 명을 경악에 빠뜨렸습니다. 미국 대학가를 휩쓴 스트리킹의 국내 첫 상륙입니다. 경찰관이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엄중히 단속하던 시절 밝은 대낮 큰길에서 나체 질주의 충격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요즘이라면 웃음거리에 그쳤을지 모르지만 40년 전 우리 사회의 분위기로는 '많은 사람이 화를 낼 만한 나쁜 짓임이 틀림없습니다. 어느 신문의 1면 칼럼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어느 집 아들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집 가문도 볼 장 다 봤다.’


이따위 얼간망둥이는 전 수사력을 풀어서라도 잡아다 혼을 내줘야 한다고 썼습니다. 조선일보는 1개 면 대부분을 할애해 스트리킹 상륙을 긴급 진단하는 좌담을 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신 이상자의 창피한 모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 후에도 사회에 불만을 드러내거나, 정신질환으로 인한 스트리킹이 있었습니다. 풍기 문란으로 비난받을 일이기는 해도 한편 그 사람의 마음이 오죽했으면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공공장소를 내달렸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나도 한때는 스트리킹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때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였을 때입니다. 모든 게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모두 불사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한번 달려봐!’


겉옷을 벗으며 창밖을 내다봅니다. 하지만 생각뿐이었습니다. 인적이 없는 깜깜한 밤에라도 달려볼까. 망설이다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 후 답답한 마음에 산에 갔던 일이 있습니다. 한동안 산에 미쳤습니다. 쉬는 날이면 무조건 배낭을 짊어졌습니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입니다. 겉옷을 벗었습니다. 땀을 흘렸지만, 그날따라 스트레스가 가시지 않습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목청을 돋우어 소리쳤습니다.


“티까지 벗어, 스트리킹 셈 치고 마저 벗어버려.”


대범하지 못한 나는 아무래도 조심이 됩니다. 바위를 등지고 햇볕에 몸을 맡겼습니다. 오랜만에 자연에 몸을 맡겨봅니다. 물속을 빼면 성인이 되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솜보다 더 포근한 햇살,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바람.’


깊은 호흡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머물렀습니다. 복잡하고 고민이 많은 사회, 나는 아직도 스트리킹을 꿈꿀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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