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오해의 장 20230217
“여기 앉아요. 인제 보니 내가 잘못 앉았어요.”
자리에 앉아있던 나이 든 사람이 한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엉거주춤하자,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아가씨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졌습니다. 코트를 입었지만 뚱뚱해 보입니다. 두루뭉술하니 배가 나왔습니다. 전철 안 임산부석입니다. 노인은 먼 길을 가는 길이니, 다리가 아팠나 봅니다. 아니면 ‘임산부석’인 줄 모르고 피곤한 마음에 덥석 빈자리를 차지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 배가 나온 여인을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내가 앉을자리가 아니라는 거듭되는 노인의 말과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습니다. 옆자리에 있던 중년이 말했습니다.
“몇 개월이나 됐소.”
아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까지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잠시 후 전동차가 역에 이르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는 다급한 일이라도 있는 양 보폭을 넓혀 출입문을 빠져나갔습니다.) 위 내용은 강사의 삭제 의견이 있었음
몇 정거장 지나자, 빈자리가 났습니다. 노인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잠시 무릎을 어루만집니다. 나는 그 아가씨를 볼 때 처음부터 임산부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임산부가 아닌 게 틀림없어.’
뒷모습을 볼 때 어깨부터 다리까지 뚱뚱한 모습이 비만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녀가 정말로 임산부가 아니라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아무래도 여자 노인이 잘못짚은 게 분명하다면 이를 기회로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랐습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중년의 남자로부터 자리를 양보받았습니다.
“어르신 여기 앉으십시오.”
뒷모습을 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내 손을 잡아끌어 자리에 앉혔습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엉겁결에 주저앉듯 자리에 앉고 말았습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상대는 멋쩍은 듯 출입문 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나는 그 후에도 몇 차례인가 자리를 양보하려는 사람으로 인해 나이 어린 어른이 되어야 했습니다.
‘경로란 그때가 좋았지.’
요즘은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들이 그리 흔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공짜 손님인 주제에 빈자리가 있으면 몰라도 자리양보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전동차에 오르면 중앙 통로를 비켜 가장자리의 노약자석 앞에 자리합니다. 젊은이들에게 눈치가 보이는 것 같아 나이 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마음에 편합니다.
나는 내 연배의 사람들에 비해 노숙해 보이나 봅니다. 형님 댁에 가는데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려 했습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나이인 것 같아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냥 앉아 가세요. 나 아직 젊습니다.”
극구 양보하는 바람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몇 정거장 지나자, 나이에 관한 말이 나왔습니다. 나보다 한 살이 적습니다. 나는 많이 앉아있었다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나이를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주민증을 확인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보면 가끔은 오인을 하는 경우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동안 양보가 미덕이라고 배웠는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집단주의의 보다는 개인주의로 흘러가다 보니 사회적 분위기는 점차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흐려지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나 우선주의라고 해야겠습니다.
우선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배려가 실종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요즘의 행태를 보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진정 국민을 위하려는 마음이 있는 거야.”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의견 내기보다는 상대를 헐뜯고 거꾸러뜨리려는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중인격자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유권자에게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행동하더니만 당선이 되고 나면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그들의 말과 표정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정치인이란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론 조사에서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요즘의 기성세대들이 미덕이 없고 개인주의 성향에 물들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된 원인은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력 우선주의에 빠지다 보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지식을 쌓을 것만 강요했지 사회 공동체 정신에는 눈을 돌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배려의 미덕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나이 든 사람들은 물론 나라와 사회의 지도자들이 솔선수범을 해야 합니다. 아니 모두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