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모자
어제는 온종일 비가 보슬보슬 내렸습니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었습니다. 가슴속으로 솔솔 봄바람이 들어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풀어헤친 웃옷의 앞자락을 자꾸만 여몄습니다. 우산 위로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안개처럼 우산 아래로 흩날리며 얼굴을 간질입니다. 그렇지만 수수의 기분은 나쁘지 않습니다. 집에 있는 동생이 보드라운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것 같아 동생 얼굴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갑자기 보고 싶어서 우산을 접었습니다.
‘빨리 가야지.’
해맑은 동생의 빨간 입술이 방글거리며 수수의 눈동자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초초도 방긋 미소를 지었습니다.
“초초야, 기다려. 기다려.”
초초는 친구가 교문을 나서며 같이 가자고 부르는 소리를 남겨 둔 채 달렸습니다.
밤새 하늘이 걷히면서 별들이 하나 둘 나타나더니 아침에는 새하얀 구름 두 송이가 우리 지붕 위의 하늘에 피어 있습니다.
“날씨 한번 좋다.”
아버지가 출근하시면서 밝은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학교로 오는 동안 하늘을 쳐다보니 계속 새하얀 구름이 수수를 따라옵니다. 가다가 멈춰서 하늘을 바라보면 구름이 그대로 멈춥니다. 다시 걸어가면서 보니 구름이 또 따라옵니다.
‘이상하다. 구름이 왜 나를 계속 따라올까?’
문방구 앞에서 영철을 만났습니다.
“이상하다.”
“뭐가?”
“구름이 나를 따라온다.”
영철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 바보. 따라오기는 우리들 머리 위에 그냥 있는데.”
산모퉁이를 돌아 뒷문으로 들어오다가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봐라. 따라왔지.”
구름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영철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습니다.
“진짜 그러네.”
그렇지만 구름은 교실까지 따라오지는 않고 뒷문 아래 연못 위에서 멈췄습니다. 쉬는 시간에 창문으로 내다보았지만 역시 구름은 연못 위에 드리운 살구나무 위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구름 모자를 타신 할아버지가 살구나무를 발견하고는 노래를 부르며 옛날 생각에 잠겨 있는지 모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연못가를 가로질러 뒷문 계단으로 올라섰지만 구름은 초초를 따라오지 않고 낮게 내려와 살구나무 위에서 맴돕니다.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도 맴맴
다시 돌아가 연못가 바위에 앉아 구름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구름 속에서 할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자세히 보니 분명 구름 모자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는 초초의 할아버지가 틀림없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오냐, 초초로구나. 네가 보고 싶고 살구나무도 보고 싶어 왔지.”
살구나무를 바라보니 가지마다 꽃망울들이 이슬이 맺히듯 새하얗게 맺혀 있습니다. 가지 사이로 예쁜 꽃망울처럼 할아버지가 빙그레 미소를 짓고 계십니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녀석도······.”
할아버지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히는 것 같습니다.
초초는 살구나무 아래서 하늘을 보며 할아버지와 재미있었던 옛날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녁노을이 바다 위를 새빨갛게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릅니다.
“초초야, 그만 집으로 가야지?”
“······.”
“다음 일요일에는 나를 보러 오너라.”
초초가 부스스 일어나 가방을 고쳐 맸습니다. 일요일 날에는 아버지를 졸라 할아버지 산소를 다녀와야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산소에는 연못가의 살구나무보다 더 많은 꽃이 피어 있겠지?
초초는 계단을 올라 집으로 달음질쳤습니다.
‘어서 일요일이 돌아와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