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가로등

입이 간질간질 2

by 지금은

송도 해안도로의 가로등은 서로 얼굴을 마주합니다. 멀어질수록 어깨가 닿고 더 멀어질수록 머리가 닿고 더욱더 멀어지면 얼굴이 닿아 코끝이 완전히 닿아 버립니다. 부슬비 내리는 날의 길가의 양 가로등은 더욱 다정하게 만납니다. 어깨동무해도 될 것 같았는데 마침내는 서로 얼굴을 마주 댑니다. 부슬비는 소리 없이 그 사이로 부슬부슬 내립니다.

그 높아 보이는 가로등도 눈을 들어 멀리 할수록 낮아집니다.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러는가 봅니다. 연못 속에 내린 것을 보면 말입니다. 바닷가 갯벌에 내린 것을 보면 말입니다.

남몰래 뭍으로 올라오던 게가 자그마한 가로등을 따고 싶어서 앞발을 들어 집게를 벌렸지만, 가로등은 따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벌렸지만 허사였습니다. 저쪽의 가로등은 작으니 딸 수가 있겠지, 하고 눈치를 보면서 옆걸음을 쳤습니다. 따지 못한다고 누군가 흉을 볼까 봐 부끄러웠던지 슬금슬금 계속 옆걸음을 칩니다.

바위 옆에 붙어 있던 따개비가 말했습니다.

“바보 멍청이, 밀물이 들어올 때 바닷물 속에 빠진 가로등을 건져야지.”

생각을 해보니 그럴 것도 같습니다. 물속에서 빠진 가로등은 힘들여 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고맙다, 따개비.”

게는 밀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이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렸습니다.

‘왠지 아세요.’

그야 가로등도 달님과 별님처럼 밤에 태어나니까 하는말입니다.

사색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좋으니까. 특히나 달님과 별님이 밀물에 몸을 담그며 졸린 눈을 깜빡거리는 새벽녘까지 아무도 귀찮게 하는 일이 없으니까요. 가로등과 달님과 별님은 구름의 방해만 없다면 졸린 눈을 바닷물로 축이면서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소곤거릴 수가 있으니까요.

며칠을 기다려 썰물에 잠긴 가로등을 발견했습니다. 달님도 있습니다. 별님도 있습니다. 파도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려 가로등을 따기 위해 살그머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집게를 벌려 가로등을 집었습니다. 또 집었습니다.

“왜 이렇게 미끄럽지?”

그러자 별님이 빤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달님이 빙그레 웃었습니다. 가로등은 왠지 자꾸만 미끄러져 버립니다. 미끄러져 버립니다. 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집게를 더 크게 벌렸습니다.

‘저쪽 건너편 섬 가장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할 텐데.’

친구가 사는 곳이 너무나 어두워서 이겠지요.

그렇지만 가로등은 식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자꾸만 미끄러집니다. 미끄러집니다. 그럴수록 게의 집게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집니다. 가로등은 점점 미끄러집니다. 벌어집니다. 더 재빨리 미끄러집니다. 더 크게 벌어집니다. 아주 재빨리 미끄러집니다. 반짝이던 별님이 슬그머니 졸린 눈을 감았다 떴다 합니다. 해안도로의 가로등도 눈을 감았다 떠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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