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환경이 나를 20230222
“취미가 뭡니까.”
“독서요.”
처음 만난 사람과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다가 나온 말입니다. 딱히 찾아낼 취미가 없던 시절입니다.
“어느 책이 맘에 들었습니까? 내용이 무엇입니까?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상대가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안을 당한 일이 꼭 한 번 있습니다. 새내기 교사 시절입니다. 신입 여교사와 책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는 독서광이었습니다.
“빌려줄까요? 책 좀 읽어요.”
시골 한여름 밤 학교 운동장의 보름달이 내 민망한 얼굴을 밝혔습니다. 선생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저하고 근무하시는 동안 숙제를 좀 하셔야겠습니다. 3년 내내 그녀의 책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두 번 읽은 셈이라며 경청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때 ‘알퐁스 도데의 별’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동안 독서 운동에 열을 올릴 시기가 있었습니다. 1980·90년대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제가 탄탄할 때입니다. 일본인의 독서량이 세계 최고라면서 개인은 물론 나라가 발전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1인 1권 갖기 운동을 권장했습니다. 홍보 때문일까요? 이 시기에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독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연간 일 인당 평균 독서량이 반 권도 안 된다고 하던 시절이니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그때로 돌아가 누군가가 나에게 취미를 다시 물었다면 ‘빈둥거리는 것’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특별히 남 앞에 내세울 것이 없다 보니 만만한 게 책 읽기입니다. 내가 이렇게 쉽사리 말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매일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까닭이 한몫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니 교과서일망정 책이 손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교과서 읽기를 독서에 가져다 붙이는 것은 왠지 어색합니다.
이런 내가 아이들의 독서교육을 위해서는 학부모가 우선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별을 헤는 밤.’
문학가들에 의해 윤동주의 시가 한창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손바닥 크기의 문고판 시집을 한 권씩 반 아이들의 손에 들려 집으로 보냈습니다.
‘이 시집이 당신의 마음에 물들어 독서인으로 이끌기를 소망합니다.’
일기 검사를 해봤지만, 시집을 부모에게 전해주었다는 말도 읽혔다는 구절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전해주었다는 말이 없는 것처럼 소문 없이 암송되었으리라 믿기로 했습니다.
나에게 차라리 취미가 뭐요 하고 물어왔을 때 ‘취미가 무취미요’하고 답했으면 꺼림칙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생각이 얕았습니다. 굳이 찾아내라고 한다면 ‘걷기’입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무작정 걷기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생각할 일이 많거나 슬프고 괴로울 때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무작정 걷다 보면 생각을 잊고 나를 잊습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걷기를 취미로 말한 적은 없습니다. 가끔 누군가 건강을 물어오면 산책이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선뜻 대답합니다. 만 보 걷기가 유행이니 이에 결부 지은 원인인지 모릅니다. 매일 만 보를 걷는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마음먹고 해 보니 실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싫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연초에도 만 보를 걷겠다고 버킷리스트에 담았으니 꾸준히 실천을 해야겠습니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작년부터 슬쩍 끼워놓은 게 있습니다.
‘공차기’
걸으면서 뛰면서 홀로 벽을 상대로 공을 찹니다. 가볍게 차면 벽면도 가볍게 되돌려줍니다. 혼자이기는 해도 땀을 흘리다 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병행이 사소한 지루함을 잊게 해 줍니다.
취미는 이따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 생겨나기도 합니다. 내 경우입니다. 한동안은 붓글씨에 미쳤고, 색종이 접기에 미쳤습니다. 학급 특색이 ‘색종이 접기’입니다. 몇 년간 행사 판이 색종이로 도배되었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내가 물었습니다.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책 읽기입니다.’
할 일이 없으니, 시간이 넉넉합니다. 거실, 주방의 탁자, 안방, 작은 방, 서재 겸 컴퓨터 방, 화장실, 창가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책들이 친구입니다. 보이면 만지게 됩니다. 길 건너 도서관, 글쓰기를 익히기 위해 들리는 노인 종합문화회관의 학우와 강사님의 독서 이야기.
이제야 취미로 글쓰기가 껌딱지처럼 몸에 붙었습니다. 읽지 않으면, 쓰지 않으면 불안하게 느껴지니 취미라고 할 만하겠지요. 취미도 변하는데 이것만큼은 변절하지 않도록 문단속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