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유토피아(utopia) 20230223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작은 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니, 하지만 큰일이라서 중요하고 작은 일이라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제 카페에서 글의 소재가 떠올라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던 시간입니다. 뒤에서 갑자기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외침이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두 명이 탁자 위에 노트북과 책을 펼친 채 소란을 떱니다. 조용하던 실내가 갑자기 시끄러우니 신경이 곤두섭니다. 마음속 여행의 준비물과 함께 기분 좋게 막 출발하려는 찰나 손가락이 정지됐습니다. 고성과 함께 의자를 들썩거립니다. 곧이어 드디어 브레이크 없는 기차가 되었습니다. 탁자 사이를 겅중겅중 뜁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노트북 대신 책을 펼쳤지만,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10여분동안 참다가 말했습니다.
“내 마음이 지금 매우 불안한데 조용히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화끈하게 공부하고 아니면 화끈하게 노는 게 좋지 않을까.”
짧은 말이지만 잠시 시끄러움이 잦아들고 종래는 조용해졌습니다. 한 사람은 공부해야겠고 또 다른 사람은 장난하고 싶어 일어난 일입니다. 이곳은 무인 카페이고 주민들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고 보니 가끔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내 집이 조용하고 아늑하지만, 이곳을 찾는 이유는 사방이 트이고 햇빛이 잘 들기 때문입니다. 창가에 앉으면 밖을 바라보지 않아도 마음이 밝아집니다.
‘유토피아’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만들어 낸 말입니다, 처음에 라틴어로 쓰인 그의 저작 《유토피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스어의 ou(없다), topos(장소)를 조합한 말로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뜻하며. 의도적으로 지어낸 지명입니다. 즉,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를 일컫는 말입니다.
지금의 내 상황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대비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의 작품은 영국의 종교적 부패와 사회 경제의 혼란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전체의 내용 만으로만 본다면 나 개인의 작은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다소 거리감이 있습니다. 유토피아를 떠올린 것은 개인의 욕심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만듭니다. 방음으로 된 칸막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편도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요술 봉이나 알라 딘의 마술램프라도……. 마음대로 활개를 쳐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비를 걸지 않는 곳을 머릿속에 그릴지도 모릅니다. 특히 아이들의 마음에는 동화 속 세상이 들어있습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부모나 어른들의 간섭을 떠나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을 그려보았습니다.
‘생각대로 이루어진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어렸을 때 상상의 세계와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허구라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세상이 있었으면 하고 막연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세계는 늘 크고 작은 혼란 속에서 하루하루가 흘러갑니다. 어느새 일 년을 넘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날 줄 모르고 생각지 않은 튀르키예의 지진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인공재해든 자연재해든 유토피아의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 일 없이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늘 바람 잘 날 없는 게 세상입니다.
“아, 그러세요. 저는 서울 신촌에 삽니다.”
“나는 학창 시절 이화여자대학교 앞 동네에 살았는데…….”
갑자기 친척이나 가족이라도 된 양 친밀감이 생깁니다. 내가 유럽을 여행 중일 때입니다. 통성명하고 보니 이웃 마을에 사는 사람입니다. 여행 내내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보살핌이라면 더 좋을 듯합니다. 자기 부모와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내내 곁에서 함께 했습니다. 앞날을 설계하는 일에 공통점이 있어서일까요. 돌아와서도 한동안 친근감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나의 무뚝뚝한 성격이 그를 붙잡아 두지 못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요, 친지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국내에 있어도 동질감으로 똘똘 뭉칠 때가 있습니다.
‘올림픽, 월드컵…….’
민심을 모으는 데는 운동경기만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독재자들은 스포츠를 중요시했는지 모릅니다. 나치 독일의 지도자 히틀러가 그랬고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 중에도 있습니다.
나는 표현이 서툰 사람입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몸이 뻐근하고 저립니다. 어제 공을 많이 차서 그런가 하는 마음에 일찍 몸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벽을 상대로 공치기하고 있었습니다.
“아휴, 미안합니다. 나이가 어려서…….”
갑자기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눈치를 채고 몇 발짝 피했습니다. 강아지가 노리는 표적은 내가 아니라 공입니다. 주둥이로 몇 번 밀어 보더니 입에 덥석 물었습니다. 주인이 달려왔습니다.
“놔놔.”
하는 말과 함께 나에게 미안함을 표합니다. 잠시 개에게 공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내 생각을 읽지 못했습니다. 억지로 공을 떼어놓고 개를 돌려세웠습니다.
한 발짝 늦었습니다. 나는 종종 늦게 발동이 걸립니다. 여분의 공이 삼십여 미터의 거리에 있습니다. 자전거 보관소입니다. 내 자전거 손잡이에는 지금 사용하는 공처럼 낡은 공이 있습니다.
그가 내 모습을 보고는 며칠 전부터 개와 함께 나무와 나무 사이를 겅중겅중 돌았습니다. 개가 공놀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아차림이 늦었습니다.
‘그냥 가지고 놀게 놔두세요. 여분이 있습니다.’
사라진 뒤편을 보며 혼잣말했습니다. 생각은 있어도 늘 한 발짝 늦는 사람은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