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메모에 대하여 20230224
잊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의 짧은 시간입니다.
‘이럴 수가.’
잠시 기억을 더듬지만,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적어놓아야 했는데 하는 마음이 듭니다. 지금과 같은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종종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똑똑한 머리보다 아둔한 메모가 낫다는데…….”
머리를 툭 치며 중얼거렸습니다.
“맨 날 기록하면서 뭐 그렇게 또 적을 일이 있다고.”
주방에 있던 아내가 들었나 봅니다. 접시에 사과 한 쪽을 내밉니다. 사과할 일이라도 있느냐고 했더니만 피식 웃어넘깁니다.
“있기는 있는데.”
며칠 전 일입니다. 내가 찾아보고 싶은 게 있어 연습장에 적어놓았습니다. 잠깐 잊고 있다가 생각이 나서 여기저기 찾은 일이 있습니다. 아내는 소용이 없는 줄 알고 다 쓴 종이를 뽑아 버렸다고 합니다. 다행히 실마리를 찾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메모하는 것은 주로 글감에 관한 내용입니다. 다른 계획이나 일정은 달력의 공간을 이용합니다. 빨강, 파랑, 검은색으로 경중을 구분합니다.
나는 다산 정약용에 친근감이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입니다. 삼촌이 한 말을 잠시 인용합니다. 정약용은 조선의 정조대왕 때 사람으로 실학자입니다. 그와 함께했던 친구 겸 학자들의 이름을 대며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말을 했습니다.
“공자왈 맹자왈 해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농사짓는 공부, 장사하는 공부가 우선입니다. 헐벗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려면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정약용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의 저서도 많습니다. 내 지식은 학교 다닐 때 역사 시간에 그의 대표 저서 중 목민심서가 있다는 것과 수원 화성을 축조하기 위해 거중기를 만들었다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또한 그의 생가를 찾아간 것은 30여 년 전이지만 놀러 가는 김에 그저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정약용에 관해 관심을 두자, 그의 세계에 서서히 빠져들었습니다. 독서의 힘입니다. 여러 가지 본받을 점이 있지만 한 가지 마음에 와닿은 것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어느 작가의 산문집에서 한 꼭지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가 메모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틈틈이 적어놓은 쪽지가 글의 토대가 되고 모아져 책으로 엮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500여 권의 저술이라니 놀랍습니다. 메모의 습관이 뒷받침했습니다.
그가 과거와 경연에서 몇 차례나 1등을 하였던 이유는 열심히 공부한 결과이지만 그 이면에는 메모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체계적인 메모는 그를 때 학자의 초석을 다지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경연(競演)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이유도 메모의 정리입니다. 학문의 분야에 맞게 갈래를 나누었습니다.
메모의 중요성은 정약용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 효용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은 생각이 떠오를 경우 즉시 기록을 남길 것을 강조합니다.
글쓰기에 취미를 붙인 나는 앞의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메모를 자주 합니다. 그들의 말 보다는 나 자신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기억력의 감퇴입니다.
둘째는 머릿속에 다 저장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말하면 두뇌의 보조수단으로 메모합니다.
하지만 나의 단점이 있습니다. 메모지를 활용한 다음에는 버리는 것입니다. 곁가지를 찾으려 했지만 이미 멀리 가버렸습니다. 낱장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공책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생각날 때마다 두서없이 기록하고 틈을 내어 갈래별로 분류한다면 효용가치가 더 크지 않을까 합니다. 내 생각도 생각이지만 이는 이미 다른 사람의 실천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아침 식사 전 떠올렸던 글감은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 봅니다. 낱장의 메모가 아니라 공책을 사용하겠다고 맘먹고는 꺼내놓지도 않았습니다.
손바닥만 한 공책을 꺼냈습니다. 하나는 책가방에 다른 하나는 거실에, 또 다른 하나는 컴퓨터 옆에 놓아야 합니다.
‘뭐더라, 뭐였더라? 하는 말은 내 입에서 없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