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호(號)에 관하여 20230225
63. 호(號)에 관하여 20230225
나는 가끔 ‘불림’에 대하여 고민 중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름 대신 아명이나 호를 사용한 기록이 있습니다. 호를 지으려고 하는 이유는 내 이름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물을 때마다 한 번에 지나가는 경우가 드뭅니다. 두세 번 말해야 알아듣습니다. 이름이 부르기 어려워서인지 모르겠습니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있습니다. 이름 대신에 호를 말하면 상대가 부르기 수월하고 기억하기 쉽겠다는 생각입니다.
생각해 낸 첫 번째 호는 ‘초초(草草)’입니다. 학생들과 생활하는 동안 동화를 틈틈이 썼는데 주인공의 이름을 지으면서 함께 쓰기로 했습니다. 교직을 떠나서는 ‘한올’이라고 했습니다. 옷감 중에 한 줄기의 실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한 줄기의 실이나 끈이지만 무리 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함께 어울려 지탱해야 제 모습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국세청에서 가끔 문자가 옵니다. ‘섬유회사’와 관련이 있는 줄 알고 서류를 보내거나 세금을 신고하라고 하기도 합니다. 낙관까지 손수 만들었는데 한동안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결론은 ‘한올’이라는 호는 접기로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내 이름에서 끝 글자를 빼기로 했습니다. 호와 이름을 결부 지으니 사람들이 이름을 쉽게 기억합니다.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가 지은 호가 튄다고 합니다. 공자, 맹자, 순자, 노자……. ‘자' 자가 문제입니다. 나를 높여보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주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립니다. 다시 생각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호란 현대로 치자면 일종의 별명과 같은 개념입니다. ‘별명’은 타인이 붙일 수도 있으나 호는 자기 자신이 정할 수도 있습니다. 특성을 생각하면 작가의 필명 또는 인터넷에서의 별명과 유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그 후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사용했습니다.
현대 시인 중에는 이름보다 호가 훨씬 더 익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정식은 ‘소월’, 박영균은 ‘목월’, 이원록은 ‘육사’……. 근현대에 활동한 인물들 가운데에서는 ‘우남’ 이승만 대통령과 ‘백범’ 김구, ‘해공’ 신익희……. 일부 대학교수들도 호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으며 현재 일반인 중에서 아호를 가진 사람들은 전통 취미인 서예, 한국화를 배운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낙관을 찍는 것이 우리나라 서예 작품이나 그림을 끝내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그림이나 서예를 배운 스승님과 상의해서 만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나의 간판으로 평생 간직하게 됩니다. 이름 속에는 나의 기대보다는 부모의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 스스로 완벽한 독립성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에서 나타내지 못하는 자신이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이정표를 만들어 가려는 것이 호(號)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나를 나타내는 것은 이름이며 국가로부터 보장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에는 법과 관계되지 않는 것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신이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에 대한 목표가 필요할 때 옛사람들은 호를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표식입니다. 자신이 만들어도 되지만 무작정 거창하고 세련된 것은 호의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식과 경륜이 있는 분으로부터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에는 겸손함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이는 남이 부르는 명칭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자신을 되돌아보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사람은 많은 호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정희’입니다. 명필인 그는 추사 이외에도 5백여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호를 지을 때는 대개 그 인생관이나 신념(忘憂堂 곽재우, 白凡 김구, 中樹 박정희). 태어난 곳(栗谷 이이, 土亭 이지함, 峨山 정주영), 자연(退溪 이황, 松江 정철, 茶山 정약용) 등을 참고로 합니다.
나는 요즘 독서, 글쓰기, 스케치, 건강에 관심을 두고 노력 중입니다. 이중에도 독서와 글쓰기는 생활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무래도 인생관이나 신념을 생각하여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범위를 좁혀갑니다.
‘아니 누구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지?’
한동안 내 호는 어떤 것이 좋을까 고민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