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책의 불편함이 아직은 20230226
책을 펼쳤습니다. 몇 정거장을 갔을 무렵입니다.
“뭐가 잘 보입니까?”
“예.”
“난 눈이 희미해서 원.”
“안경을 쓰시면…….”
나는 책을 읽을 만한 곳이구나 싶으면 남의 시선과 관계없이 가방을 엽니다. 어디를 가든 책가방이나 혹은 보조 가방이 손에 들려있습니다. 보조 가방인 경우에는 달랑 책 한 권과 돋보기입니다. 맨눈으로 책을 읽을 때도 있지만 어리어리할 때를 대비해서 챙겨갑니다.
옆의 사람은 주위를 한동안 두리번거리더니 앞사람들과의 시선이 불편했는지 눈을 감았습니다. 아니면 피곤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몇 정거장을 지나친 후 역에서 내렸습니다. 곧바로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앉았습니다. 발걸음 빨랐습니다. 하마터면 나를 밀칠 뻔했습니다.
“어이쿠, 미안합니다.”
몸을 움찔 벽으로 밀착시켰습니다. 오늘따라 노약자석은 빌 틈이 없습니다. 그가 휴대전화를 꺼내 한동안 무엇인가 들여다봅니다. 힐끔 눈이 갔습니다. 바둑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나는 젊어서 한동안, 퇴직을 한 후 잠시 바둑으로 일과를 삼았습니다. 하지만 곧 그만두었습니다. 긴 시간은 나의 해야 할 일을 빼앗아 갑니다. 지금은 바둑과 멀어져 회관의 바둑실 옆을 지나갈 때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어쩌다 기회가 있어도 승패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전에는 바둑을 지면 마음에 걸려 복기하고 원인을 찾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그가 혀를 차더니 어깨를 돌려 나를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재미있으십니까?”
“예, 늙은이가 뭐 할 일이라고는 없으니, 휴대전화나 들여다보지요.”
늙은이뿐이겠습니까, 요즘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전철을 타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뿐입니까. 길을 걸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합니다. 나는 가끔 불안을 느낍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들여다보는 학생을 발견했습니다.
‘저 저저……’
좁은 길의 장애물을 잘 피해 갔습니다.
옆 사람이 말했습니다.
“불편하게 뭣 하러 책을 들고 다닙니까. 휴대전화가 얼마나 편리한데.”
“그렇지요!”
잠시 그의 스마트 폰의 자랑이 이어집니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가르치기라도 할 모양입니다. 펼쳐 놓았던 책을 슬며시 덮었습니다. 외면하기가 곤란합니다.
“저는 아직 스마트 폰에 적응이 덜 돼서 책이 더 편리합니다.”
가벼운 가방이 균형을 잡았습니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는 환승해야 합니다.
내가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손에 익숙한 이유도 있지만 눈에 피로가 덜 하기 때문입니다. 전자책의 경우 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할 경우 장시간 매달리기가 어렵습니다. 눈부심으로 불편을 느낍니다.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전자책을 쉬게 빌려볼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아직 시도해 본 일은 없습니다. 아직은 편리함에 실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살아가면서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것은 여러모로 자신을 편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휴대전화가 시중에 널리 유통되었을 때도 나는 빈손이었습니다.
“뭐야, 휴대전화 하나 없이…….”
친구들이 놀렸습니다. 하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휴대전화를 구입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몸에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G 폰을 스마트 폰으로 바꾸는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 편리함을 세뇌당한 후에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서평도 볼 수 있습니다.
전철 안에서 스마트 폰에 정신을 파는 사람들을 봅니다. 가끔 독서하는 이들을 발견합니다. 슬그머니 짧은 시간 내용을 훔쳐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치를 챘는지 고개를 돌립니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닌 양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종이 물보다 영상문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독서는 전자매체와 종이매체를 구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선호도에 따르면 됩니다. 내가 종이책에 익숙해 있다고 상대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이 독서 활동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