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똥 이야기 20230221
“재수 옴 붙었네.”
개똥을 밟았습니다. 그것도 이른 아침입니다.
이제는 사람 똥보다 개똥 보기가 쉬워졌습니다. 반려견이라는 말이 쉽게 나돌면서부터의 일입니다. 당황한 나머지 망설이다가 잔디에 신발을 문지릅니다. 아무래도 똥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걷기를 많이 해야겠습니다. 어차피 걷자고 나온 길이니, 수변공원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그곳은 긴 물길이 있어 신발을 닦기에 용이합니다.
목적지에 이르자 조정선수들이 날렵한 배에 몸을 싣고 균형을 맞추어 노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괘종시계의 추처럼 몇 차례 왕복할 것입니다. 둑으로 내려서 큰 돌에 몸을 의지한 채 신발을 벗었습니다. 마른풀을 모아 수세미를 만들었습니다. 흘러가는 물에 담갔다가 슬근슬근 고무창을 문지릅니다.
‘신발을 세탁하는 셈 치지 뭐.’
나머지 신발도 씻었습니다. 닦는 내내 기분이 언짢았지만 끝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어렸을 때는 똥을 밟는 경우가 가끔 있었습니다. 작은 아이들은 놀다 급하면 길가나 풀 섶에 아무렇지 않게 용변을 보기도 했습니다.
“에이, 재수 없어. 나쁜 놈.”
신발을 흙바닥에 질질 끕니다. 앞뒤로 쓱쓱 문지르기도 합니다. 풀 더미로 가서 신발을 신은 채 문지릅니다. 냇가가 가까이라도 있으면 다행입니다. 물을 찾아갑니다.
아이들은 똥을 더럽다고 하지만 농사를 짓는 어른들은 다릅니다.. 더럽다는 생각은 같겠지만 똥오줌을 귀하게 여깁니다.
내가 어렸을 때입니다. 겨울이면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사랑방에 짚단을 가져와 새끼를 꼬거나 바구니를 만들었습니다. 짚신을 삼기도 하고 수수 빗자루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겨우내 할 일이 없으니 그동안 생활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빗자루를 만들다가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온 거야?”
“집에를 좀…….”
“뭐, 빠뜨린 거라도.”
“아니, 용변을 보고 왔지.”
“우리 변소와 오줌동이 사용은 공짜인데.”
“아까워서, 오줌보 터지는 줄 알았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며칠 전입니다. 우리 글쓰기 반에서 한 학우님이 시를 발표했습니다. 아버지의 농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줌 한 바가지 들고 오셨네./ 똥 한 줌 들고 오셨네./ 귀하다 하시네.
시의 일부를 옮겨보았습니다.
지금처럼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 똥오줌은 낙엽과 함께 천연 비료였습니다. 집마다 두엄더미가 있었습니다. 낙엽이나 풀을 모아 쇠똥, 돼지똥, 닭똥 등을 섞어 발효시켰습니다. 인분을 끼얹기도 했습니다. 퇴비입니다. 농사철이 다가오면 퇴비를 논밭에 냈습니다.
시골에서는 똥오줌이 농사에 요긴하게 쓰이지만, 도시에서는 처치하기가 곤란했습니다.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의 일입니다.
“똥 퍼요. 똥 퍼”
똥을 전문적으로 치워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낮이면 수레를 끌거나 지게를 지고 골목길을 다녔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이니 누군가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똥오줌은 도시의 변두리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팔려나갔습니다.
곳곳에 똥 고개도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화장실도 없이 사는 사람들은 후미진 곳에 볼일을 봤습니다. 신촌에 살 때입니다. 나는 등하교를 하기 위해 아현동 고개를 넘어 용산까지 왕복했습니다. 지름길로 가려면 똥 고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려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피해 걸었습니다. 똥 고개는 이곳 하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도시 곳곳에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반려견이라고 하면서도 개똥을 치우지 않는 사람이 밉습니다. 동물도 제 새끼 귀여운 줄 안다고 합니다. 반려 가족이라고요? 하지만 사랑하는 만큼 잘 돌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저 사람 슬그머니 눈치를 보네요. ‘개똥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