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농사 준비 20230220
“김서방 댁 거름 내는 날이 언제라고 해.”
“경칩을 지나서라지.”
“응, 사흘 후라는군.”
동네 사람들이 똥 푸는 날을 확인합니다. 그 집 똥을 푸는 날은 냄새가 마을을 가득 채웁니다. 이를 알고 있기에 동네 사람들이 함께 날짜를 맞춥니다. 김서방네는 마을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그의 농토의 대부분은 동구 밖에 있습니다. 대종가 집이라서 일가친척이 많고 집도 큽니다. 해마다 조상의 크고 작은 행사가 있다 보니 손님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화장실 아니 변소는 집의 규모에 비례해서 크다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니 그만큼의 공간 필요합니다.
“똥을 푼다고요.”
한두 사람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그 집 머슴으로 모자라 일손을 몇 명 더 구합니다. 다른 집들처럼 지게를 이용하지 못하고 마차에 똥장군을 싣습니다. 이렇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봄이면 그동안 묵힌 배설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본격적인 농사 준비입니다.
올해는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랫집 친구 동생이 똥독에 빠졌습니다. 인분을 치우려고 변소의 거적문을 열어놨는데 꼬마가 궁금했나 봅니다. 친구 어머니가 곧바로 발견했기에 다행이지 큰일을 치를 뻔했습니다.
“아이고, 이를 어째…….”
아이를 건져냈습니다. 온몸이 똥 범벅입니다. 아이를 씻기는 내내 똥독에 걸리면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구시렁거렸습니다. 동생을 돌보지 않았다는 죄로 친구는 등짝을 몇 차례 맞았습니다.
이것으로 동네 액땜을 했나 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우리 집 이야기입니다. 샘골 밭을 일구러 집안 식구들이 출동했습니다. 우리가 산비탈 묵밭을 정리했을 때 삼촌이 때를 맞추어 똥장군을 지고 왔습니다. 비탈의 언덕에 지게를 내려놓는 순간 중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기우뚱하는 순간 똥장군이 지게에서 떨어져 비탈로 굴렀습니다.
“비 비 켜요.”
똥장군이 몇 바퀴 구르다 돌부리에 부딪히며 깨져버렸습니다. 인분이 여겨 저기로 흩어지며 토기 파편들이 아래로 굴렀습니다. 모두 혼비백산하여 가장자리로 피했습니다.
“아이고, 엄마야.”
고모가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대다가 깨진 파편을 겨우 피했습니다. 하지만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며칠 동안 허리가 아프다고 손을 짚고 다녔습니다. 삼촌은 똥장군을 잡으려고 하다 똥칠했습니다. 삼촌은 삼촌대로 재수 옴 붙었다며 혀를 찼습니다.
내가 중학교 때 잠시 살았던 왕십리 생각이 납니다. 지명에 얽힌 유래는 알고 있으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똥 이야기입니다. 왕십리역과 응봉동 돌산 사이에는 매우 큰 똥 저장소가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는 수세식 화장실 귀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입니다.
“똥 퍼요, 똥 퍼.”
리어카나 지게를 진 사람들이 골목을 다녔습니다. 인근지역에서 발생하는 인분이 이곳 저장소에 모였습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들의 수고를 빌렸지만, 생활이 어려운 가정은 날을 잡아 손수 치워야 했습니다.
소나기가 쏟아진 다음 날 아침입니다. 어머니와 이모님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망신당할 뻔했지, 뭐야. 밑에 집 때문에 겨우 모면했지.”
“앞으로는 아무리 어렵다 해도…….”
마침 가진 돈도 없고, 남자 어른들은 여러 달 일감을 찾아 외지로 나갔습니다. 변소에 인분은 차올라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소나기가 쏟아지자, 기회는 이때다 하고 하수구에 한 바가지를 버리려 하는 찰나 큰 소리가 났습니다.
“어느 놈이야.”
소리친 사람의 윗집에서 비 오는 틈을 타서 인분을 버린 모양입니다. 하수구를 따라 인분이 떠내려가며 냄새가 퍼졌습니다.
“똥 퍼요! 똥 퍼!”
똥지게를 진 사람의 큰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손으로 코를 쥐고 쏜살같이 지나가야 했던 그 시절의 똥이란 질 좋은 천연비료였습니다, 가끔 홍수가 나서 변소가 넘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똥 푸는 사람은 온종일 똥 짐을 지고 농부에게 가져다주면 값을 치러 주었습니다. 그 돈이면 처자식을 충분히 먹여 살릴 만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한동안 분뇨 수거 차량에 장착된 펌프 호수로 정결하게 빨아들이고 이제는 그마저도 도시에서는 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