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전도사 20230219
내가 공을 차고 있을 때입니다. 개와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이 내 곁을 지나 큰 나무들이 자리한 곳으로 들어섰습니다. 조금 있으면 개가 용변을 볼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대부분 개가 이곳에서 같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내 예상이 맞았습니다. 개가 용변을 보는 사이 주인은 주위를 슬금슬금 살핍니다. 아파트 단지 안이라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입니다. 주머니에서 비닐봉지가 나왔습니다. 다음 순서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내 발걸음과 공은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듯 움직입니다. 같은 행동을 여러 달 반복하니 일정한 규칙을 보입니다. 속옷에 송골송골 땀이 배는 느낌이 듭니다.
내 뛰는 모습을 눈여겨보던 사람이 제자리 뛰기를 합니다. 이어 강아지와 함께 나무 사이를 천천히 달립니다. 내가 움직이는 보폭과 비슷합니다. 그는 개를 몰고 달리고 나는 공을 차며 달립니다. 그는 개를 달래고 나는 공을 놀립니다. 벽과 함께 공을 주고받던 나는 다른 방향으로 찼습니다. 공이 달아납니다. 잡으려고 쫓아갑니다. 벽에 부딪힌 공이 나를 향해 다가옵니다. 어미와 헤어지기 싫은 송아지처럼 발 가까이 다가옵니다. 반기는 듯 다시 차고 멀리 달아나는 공을 쫓아 달립니다. 또 방향을 바꾸어 다시 돌아옵니다. 불규칙한 행동이지만 같은 일이 잠시 반복되었습니다. 개 주인은 달리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틈틈이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힐끗힐끗 곁눈질합니다.
며칠 전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가 내 모습을 곁에서 잠시 바라봤습니다.
“차보고 싶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공을 내주었습니다. 몇 번 차보고 돌려줍니다.
“더 차지.”
“바빠서요. 학원 가야 해요.”
나는 공차기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넉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공을 찼기 때문입니다. 다짐하려고 밤에 찬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아파트 단지 ‘찻집’에서의 일입니다. 책을 읽다가 뒷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층에서 피트니스를 하나요?”
“아니요, 코로나로 인해 그만두었습니다. 벌써 오래된 걸요.”
“그럼, 골프를 해보시면 어떻습니까?”
“시간이 없어서요.”
두 사람은 한동안 이 운동 저 운동의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두가 돈과 정해진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수영, 탁구, 파크 골프, 볼링…….
생각 같아서는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지만 그만두었습니다. 내 이야기에 관심을 두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한 마디로 하찮게 여길지 모릅니다. 우리 집은 다소 어수선합니다. 누군가 방문한다 싶으면 운동기구들을 재빨리 방 한 곳에 쓸어 넣습니다. 짐볼, 배구공, 소프트볼, 아령, 완력기, 고무줄, 지압하는 도구, 그 밖에도 잡다한 것들이 있습니다. 책 읽는 습관을 들이고 싶으면 책을 여기저기 보이는 곳에 놓아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방문한 사람이 돌아가면 다시 실내는 정돈에서 해방됩니다. 눈에 항상 보이면 어느 것 하나라도 잡아보게 됩니다.
운동이란 아무 때나 하기 쉬워야 합니다. 장소와 시간을 정해놓으면 활동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은 이런 일로 내일은 저런 일로, 시간을 놓쳐서 장소가 달라져서 핑곗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운동이란 아무 때나 할 수 있어야 좋습니다. 기구가 꼭 있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 빈틈이 있다면 됩니다. 맨손체조와 스트레칭 깔볼 게 아닙니다. 몸의 유연성을 기르는데 좋습니다. 팔 굽혀 펴기, 벽을 손으로 밀기, 몸을 아래위로 허벅지 운동, 제자리 뛰기, 줄넘기 등, 맘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운동도 못해요.”
뒷사람 중에 누군가 말했습니다. 짐작합니다. 그는 사업가임이 틀림없습니다. 사업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 여겨집니다. 그렇기는 해도 전문적인 스포츠가 아니라면 꼭 돈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달 사이에 내 몸동작의 변화를 느낍니다. 몸이 유연해지고 발동작이 공의 속도와 가까워졌습니다. 공이 내 발끝에서 노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은 꼬마 아이 몇 명이 공을 가지고 내 곁에서 놉니다. 어느새 그들과 공 뺏기 놀이합니다.
“학교에 안 갔어.”
“방학이에요.”
한 견주가 강아지와 공놀이를 합니다. 공이 반짝입니다. 점심시간이 지난 따스한 햇볕입니다. 오늘은 우수입니다. 봄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뛸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