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목화씨 한 알의 온기

한알

by 지금은

가을이 깊어지던 어느 날, 마을 어귀의 밭 한쪽에 작은 목화씨 한 알이 바람에 실려 내려왔습니다. 그곳에는 작두콩의 덩굴이 마르고, 해바라기의 줄기가 바스락거렸습니다.

“이제 너의 차례야.”

바람이 목화씨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요?”

“먼 남쪽 나라에서, 따뜻한 햇살을 따라왔단다.

너는 이제 이 마을의 겨울을 밝힐 아이야.”

그렇게 목화씨 한 알은 촉촉한 흙 속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햇살이 흙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고, 씨앗은 작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얀 꽃이 피어 눈처럼 세상을 덮을 날이 오겠지.’

봄이 오자, 목화의 새싹은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안녕, 세상아.”

그 옆에는 분꽃이 수줍게 피어 있었고, 민들레가 하얀 머리칼을 날리며 여행을 떠날 인사 했습니다.

“너도 하늘을 닮은 꿈을 꾸는구나.”

목화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응, 나는 하얀 꿈을 꿔.”

여름이 되어 목화의 줄기는 무성해지고, 연초록 잎 사이로 하얀 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은 낮에는 초록 잎 사이서 머리를 내밀었고, 밤에는 달빛 아래에서 새하얀 빛을 마음껏 내보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달밤에 밭길을 걷다가 속삭였습니다.

“저기 봐요, 어느새 목화꽃이 피었어요. 메밀꽃이 핀 것보다도 더 빛이 나는구먼요.”

달님은 그 말을 듣고 기분 좋은 듯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래, 저 하얀 꽃은 내 친구야.”

목화는 달빛과 별빛, 바람과 함께 밤마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얀 것은 차가운 게 아니야. 하얀 건 세상을 덮는 따뜻한 빛이야.”

가을이 되자, 목화꽃이 떨어진 자리마다 둥글고 포근한 목화 다래가 열렸습니다. 그 속에는 부드러운 솜이 차곡차곡 차 있었지요.

아이들이 다가와 손끝으로 만지자, 솜이 사르르 녹는 듯 부드럽게 감겼습니다.

“우와, 구름같아요!”, “먹어볼까?”

한 아이가 장난을 치자 옆의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먹는 게 아니란다. 목화 다래는 조금 쌉쌀하지. 하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옷이 숨어 있단다.”

마을의 여자들은 추수를 마친 뒤, 목화송이를 따서 큰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밤마다 방안에서는 물래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습니다.

‘드르륵, 드르륵’

손끝에서 하얀 솜이 길게 실로 뽑혀 나왔지요. 그 실은 베틀로 옮겨져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며 옷감으로 짜였습니다. 여인들의 손끝에서 흰 천이 생겨나고, 아이들의 옷, 아버지의 저고리, 어머니의 치마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건 다 목화씨 한 알이 준 선물이란다.”

할머니는 실을 감으며 손주에게 말했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거야.”

“그럼, 목화는 하늘에서 온 선물이에요?”

“그렇지. 하얀 건 눈처럼, 마음을 덮는 색이니까.”

겨울이 다가오자, 눈이 내리고 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솜이불을 마련했습니다. 각자 새로 만든 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웠고, 연기 오르는 굴뚝 아래에서 엄마들은 다듬이질하며 새해를 준비했습니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그 소리는 온 동네에 울려 퍼졌습니다. 마치 목화들이 하늘에서 대답하듯 별빛이 반짝이며 손뼉을 쳤지요.

“목화야, 고맙다.”

어느 집에서든 그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목화씨 한 알의 생명은 이제 옷이 되어 사람들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추석이 지나고, 설날이 다가오던 어느 밤, 달빛 아래서 흰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그 눈 위로 한 아이가 서서 속삭였습니다.

“달님, 목화는 지금 어디 있을까요?”

달님이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모두의 어깨 위에 있단다. 한 알의 씨앗이 실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덮고 있지.”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럼, 목화씨는 다시 자랄까요?”

“물론이지. 봄이 오면, 누군가의 품에서 또다시 싹을 틔우겠지.”

달님은 아이의 머리를 달빛으로 쓰다듬었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꿈꾸었습니다. 하얀 들판에 수많은 목화꽃이 달빛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바람이 불며 속삭였습니다.

“하얀 것은 사랑이야. 누군가를 따뜻하게 감싸는 마음이야.”

다음 해 봄, 어른들은 넓은 텃밭에 목화씨를 심고, 마당 가 울타리 옆에는 작은 손이 조심스레 목화씨 한 알을 심었습니다. 그 아이는 말했다.

“올해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줄 거야.”

그 위로 햇살이 내려앉고, 바람이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목화씨 한 알은 다시 싹을 틔워 하얀 세상을 준비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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