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68. 개학 20230302

by 지금은

68. 개학 20230302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동안 보지 못한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횡단보도의 신호등 앞에 아이들이 서 있습니다. 신호가 바뀌자, 아이들이 일제히 길을 건넙니다. 휑하던 아침 횡단보도가 제구실하는 듯합니다.

‘맞아, 오늘부터 새 학년 개학이지.’

학교 운동장에 한동안 아이들이 보이지 않자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2월은 선생이나 아이들이나 재미없는 썩은 달.’

종업식이 끝나면 절간이나 다름없습니다.. 우중충하고 쌀쌀한 날씨는 마음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쉬는 날이 많다고는 하지만 어디 놀러 가기에도 마땅치 않습니다. 내가 학교에 다니지는 않지만, 어서 빨리 개학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새 학교 새 학년 새 학기이니 아이들의 마음이 설레지 않을까 합니다. 내 시절을 떠올려서 하는 말입니다. 한국인에게 공부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우선순위입니다. 전쟁 통에 피난처에서, 낮에 일을 끝내고도 야학으로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도, 아파도, 나이 들어도 배워야 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에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이유든 배움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공부의 지속은 타 동물과 견주어 볼 때 가장 위대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고 학생부군 신위(顯考 學生府君 神位)’

죽어서도 평생 배우며 사셨던 우리 집의 아버지로 기억되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산촌에 살고 있었으니, 나무꾼이 되고 꼴 베는 사람이 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다음 해 어머니의 헌신으로 서울로 거처를 옮기고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떠나는 날 삼촌은 내게 중학교 교복을 사주었습니다. 입학시험을 치를 날이 두어 달이나 남았는데도 학생이라도 된 양 교복을 입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철이 늦게 들어서일까요.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 것은 세상을 뜨신 후입니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때늦은 후회와 때늦은 고마움입니다.

‘어머니,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보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잠자리에 들면서, 깨어나서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우리에게 배움이란 학교 안의 지식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 사람 공경하고, 신의를 지키며 일 처리 잘하고,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학교 문턱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미 배움을 이룬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학식과 인성의 겸비를 요구합니다. 학력은 높지만,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헛배웠다고 비난받습니다. 배움이 내 삶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응용과 실천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빌린 책을 반납하고 신문도 볼 겸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어제까지도 북적대던 도서관이 한가합니다. 이 아이들이 제 자리를 찾아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람석이 어른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언제 자리가 날까 눈치를 보았는데 오늘은 앉고 싶은 창가로 갔습니다. 봄 햇살이 마음을 따스하게 해 줍니다.

대학도서관이 내 앞에 있는 듯합니다. 고등학교 여름 방학 때입니다. 비좁은 방을 벗어나 대학생이라도 된 양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학도서관에 갔습니다. 산속에 자리 잡은 건물은 아늑했습니다. 창밖의 푸름이 더위를 달래주었습니다. 도서관 사서는 친절했습니다. 오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와서 책을 봐도 좋다고 했습니다. 공부하다가 싫증이 나면 뒷산의 오솔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가끔 꿩이 나를 놀라게 하고 토끼가 모습을 보였습니다.

책을 몇 권 빌려 나오는데 곁에 있는 중학교가 궁금했습니다. 길을 건너 학교로 향했습니다. 공부하는 날이 맞습니다. 아이들이 하교했는데도 몇몇 아이들이 겉옷을 벗어부쳤습니다. 공차기가 한창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바람이 불어 제법 날씨가 쌀쌀합니다. 배움의 끝은 없습니다. 절간은 조용해야 하지만 학교의 운동장은 시끌벅적해야 합니다. 나도 움츠린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은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