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71. 동행 20230309

by 지금은

개와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흔히 보는 광경입니다. 개가 너무 많아 때로는 귀찮게 여기지만 동행이라는 면에서는 괜찮겠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라면 심심하지 않아서라고 이유를 대겠습니다. 귀찮다는 생각은 내 보행을 방해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입니다. 내가 걸어가려는 발걸음을 방해합니다. 방향입니다. 바닥에 신경을 쓰는 강아지는 내 발걸음을 무시하고 다가옵니다. 어쩌겠습니까.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한 가지 또 있습니다. 가릴 곳 안 가릴 곳 구별하지 않고 제멋대로 찔끔찔끔 실례를 합니다. 그 모습이 맘에 들지 않지만, 깨끗한 바닥에 얼룩이 싫습니다. 가끔 견주가 똥을 치우지 않은 채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개에 대한 호감이 없다 보니 가까이하지 않지만, 견주의 마음은 이해하려고 합니다. 혼자 걷는 것보다는 덜 외로워 보입니다. 행사장에서 홀로 단상에 오를 때 가족이나 친지가 꽃다발을 전해주거나 카메라를 들고 관심을 보여주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걷기를 좋아합니다. 별일이 없다면 운동을 핑계 삼아 밖으로 나갑니다. 한동안 홀로 걸었는데 가끔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상보다 먼 거리를 걷다 보면 인제 그만 멈췄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되돌아가려면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플라스틱 음료수병을 발견했습니다. 길 가장자리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햇빛에 반짝입니다. 무심코 발로 차올렸습니다. 잠깐의 신음과 함께 길 위에 올라섰습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아무렇게나 버려졌군.’

그렇다고 내가 주인이 되기는 싫습니다. ‘툭’ 앞을 향해 발길질합니다. ‘데 그르르 털썩’ 아무렇게나 굴러갑니다. 구른다고 해야 할지, 미끄러진다고 할지 표현하기가 애매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맞지 않는 호흡을 서로 나누면서 한동안 동행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의 쓰레기통에서 이별했습니다. 플라스틱병은 걷는 동안 잠시 내 심심함을 덜어주었습니다.

꾀가 생겼습니다. 뭔가 있으면 덜 심심합니다. 이후로는 가끔 내 손에 내 발에 물건 하나가 들려있습니다. 수변공원을 걷고 있는데 풀숲에서 테니스공을 발견했습니다. 늙었습니다. 아니 낡았습니다. 털이 빠지고 겉이 재색으로 변했습니다. 말을 잘 들을 것 같습니다. 가끔 방향을 이탈하기는 해도 플라스틱병보다는 내 마음을 잘 알아차립니다. 발끝으로 살살 굴리며 걷습니다. 공을 집어 들어 굴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길을 갑니다. 집 가까이 이르자 길 구석에 슬며시 공을 밀어 넣었습니다.

‘심심할 때 다시 보자.’

그 후로 곧 잊어버렸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생각이 나서 보니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다림에 지쳤나 봅니다.

무작정 걷는다는 것은 나를 잊을 수 있어 좋습니다. 걷다 보면 잡다한 생각이 사라집니다. 내가 왜 걷고 있는지도 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쑥 심심하다거나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생각을 돌려야 합니다. 눈을 돌려야 합니다. 청각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눈이 새를 바라봅니다. 발걸음이 이들을 따라갑니다.

‘아하’

어느새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섰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새를 쫓아, 소리를 쫓아 발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때로는 강아지처럼 부지런히,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이동합니다. 봄이면 새소리에, 꽃에 마음이 홀리고, 여름에는 푸름에, 소나기에, 가을이면 하늘에, 단풍에, 겨울이면 눈에, 고요함에도 홀립니다.

나는 요즘 걷기가 힘들다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이 듦의 징조인지 모르겠습니다.

체력이 달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걷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끔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을 챙겨야 하는데, 만 보는 걸어야 하는데…….’

바람 빠진 공이 창고에 있습니다. 새것이나 다름없기에 한동안 잠들어 있던 것을 깨웠습니다. 바람을 넣었습니다. 같이 놀기로 했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수고했어.’

눈 내린 흙바닥에서 땀을 흘리며 함께 놀았습니다.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흙투성이가 되었습니다. 함께 샤워해야겠습니다. 다음에는 함께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너도 알몸 나도 알몸, 그렇게 마음을 함께하며 동행도 할 수 있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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