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어느 어머니의 공책 20230323
‘도서관 하나가 사라졌어요.’
노인 한 사람이 하느님 곁으로 갔습니다. 진짜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삶의 흔적이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기록이 있다면 한 사람의 삶이 역사로 기록되기도 하고 가정사로 남기도 합니다.
인류의 문명을 살펴보면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축적되면서 점차 기록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옛날 원시시대의 기록은 주로 그림입니다. 아직도 현존하는 벽화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어 글의 탄생과 함께 그림과 글들이 인류의 문명을 발달시켰습니다. 이를 보관하는 건물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예가 도서관, 미술관입니다. 어느덧 그림이나 글씨는 보편화되었고 점차 다양한 영상매체를 이용하여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공책 100권의 주인공’
내용이야 어찌 됐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머니이며 할머니인 그녀는 배움이 많지 않았고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영어 선생인 딸에게 전화했습니다.
“‘너는 누구니’를 영어로 뭐라고 하지”
“시골에 사시면서 그런 걸 뭐 하려고 물어봐요. 다 늦은 나이에…….”
“그냥 궁금해서…….”
딸의 대답은 좀 퉁명스러웠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안부를 묻듯 말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아들에게는 한자 말이나 사자성어를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아들의 반응도 딸처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던 중 침대 밑에서 차곡차곡 쌓인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먼지 묻은 공책이 대수로이 보이지 않아 버려야겠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르던 중 하나가 미끄러져 거실에 떨어지며 펼쳐졌습니다.
공책을 들어 몇 페이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아!’
어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있었습니다. 비록 서툰 문장이지만 일상은 물론 배움에 대한 기록이 지면을 메웠습니다. 어머니가 가끔 자신에게 물었던 글귀도 있습니다. 영어의 문장, 아들에게 물었던 한자와 고사성어 등 여러 가지 내용이 줄을 이었습니다.
어려서 배우지 못했던 미련이 남아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자 늦은 나이지만 배움을 생각했습니다. 밖으로 내버리려던 공책들을 다시 방 안으로 들였습니다. 먼지를 털고 가지런히 책장에 넣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삶이며 가정의 역사입니다. 별 볼 일 없게 여겼던 어머니의 공책이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잊었던 배움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내 아내의 경우입니다. 결혼 후 쓰기 시작한 가계부가 안방에 있는 문갑의 두 칸을 가득 채웠습니다. 10여 년 전입니다. 다른 물건을 넣어야 하는데 자리가 부족하니 지난 가계부를 버리자고 했습니다.
“안 돼요, 보관하면 가정의 경제사가 됩니다.”
50여 년이 지나자, 문갑이 낡았습니다. 도저히 물건을 보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문갑을 버리며 안 쓰는 물건도 함께 버리기로 했습니다. 서운한 마음에 첫 가계부를 들쳤습니다. 월급 16만 원, 마늘 한 접만 오천 원, 지금의 값과 비교해 보니 금값입니다. 마늘 농사가 흉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외삼촌 환갑에 부조금 2만 원. 원금 상환보다 이자가 몇 배나 많은 집 융자금……. 그달의 가계부는 적자입니다. 비고란에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허리를 졸라매자, 하지만 배워야지. 피천득 시집 문고판 7백 원.’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머니의 부름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정년퇴직을 하고 한동안 집에 있다가 어느 날 어머니의 공책을 떠올렸습니다. 자신도 어머니처럼 배움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처럼 추억을 남기고 싶습니다.)
요즈음 사진과 글이 함께하는 많은 책이 서점에 나와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행에 관한 책이 주를 이르더니 다양한 일상의 기록들이 많습니다. 사진에 간단한 글이 어우러져 내용을 돋보이게 합니다. 맛보기로 며칠 전부터 평생학습관에서 ‘사진과 에세이’ 과목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특히 독서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소설 동화, 시, 산문을 읽습니다. 요즘은 철학에 시선을 돌리기도 합니다. 글쓰기도 하는 중입니다. 나는 ‘사진과 결부 짓는 에세이’에 대해 깊은 관심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가끔 사진에 글을 입히기도 합니다. 하찮게 여겼던 것이 재미 삼아 한 장 한 장의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가끔은 미소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노트 속 이야기처럼
가끔은 일회용 종이컵의 겉면에 그리는 낙서도 소통의 끈이 될 때가 있습니다.
‘나도 백여 권의 공책을 남길 수 있을까?’
이 생각 저 생각을 남기다 보면 지면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하지만 나는 공책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상공간이나 아니면 책으로 남겨야 합니다. 타자에 익숙해지다 보니 공책에 남기는 내용은 짧은 기록입니다. 메모라면 맞습니다. 독서와 나의 글쓰기 목표는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보다는 건전한 삶을 위한 일입니다. 뭔가 배우고 알고 싶어 했던 사람으로 남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