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봄나들이 20230404
봄은 알고 있습니다. 늘 되풀이되는 과정이니 머리가 나쁘다고 해도 때가 오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눈을 헤집고 복수초가 노란 눈망울을 드러냈습니다. 노란 열기에 곧 눈을 녹여버릴 것만 같습니다. 매화가 피고 산수유꽃이, 어느새 벚꽃도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내일은 비가 내릴 거라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동안 가뭄이 심했습니다. 흙바닥을 걸으면 먼지가 슬금슬금 신발 등으로 기어올랐습니다. 100밀리나 200밀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가뭄을 쫓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꽃구경을 갔습니다. 밤 뉴스를 보다 보니 여의도의 벚꽃 길을 소개합니다. 가본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0년도 더 된 것 같아요.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이니 아무래도…….”
작년에는 석촌 호수의 벚꽃을 구경했습니다. 인천대공원의 꽃이야 해마다 구경하는 것이고 보면 아무래도 여의도의 벚꽃이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이 붐빌 것을 예상하고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번지수를 잘못짚었나 봅니다. 여의도역에서부터 만원입니다. 이태원 압사 사고가 떠올랐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벽 쪽으로 붙었습니다. 승객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면 뒤를 따를 생각입니다.
인도로 나오자, 벚나무들이 꽃을 만개한 채 우리를 반겨줍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은 잠깐입니다. 인파에 밀려 꽃구경하는 건지 사람 구경을 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오늘따라 기온이 높습니다. 예보로 알고는 있지만 만약을 위한 염려가 화근입니다. 전철에서 추울 것을 염려하여 두꺼운 겉옷을 걸쳤습니다. 차 안에서는 기분이 좋았는데 밖은 반대입니다. 옷을 벗어 들었지만 거추장스럽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배낭이라도 메고 올 걸.”
“그러게 말이에요.”
아내가 맞장구를 쳐주었습니다.
어젯밤을 설친 때문일까요. 몸의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몸이 뻐근하고 졸리기만 합니다. 평소와는 달리 걷다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한강 둔치로 내려섰습니다.
‘Finch’
길의 한가운데 흰 아치가 세워져 있습니다. 어느 기관의 마라톤 행사가 막 끝난 모양입니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쁩니다. 나도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싶었지만, 머뭇거리는 사이에 아치는 치워지고 말았습니다. 아쉬움을 말하자, 아내가 내년을 위해 기약하자고 합니다. 기다림이 꼭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치워진 빈자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맞습니다. 다음 날 오후 나물 이야기를 하며 아내를 집 앞의 공원으로 이끌었습니다. 벚꽃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 집 주변을 돌아봤는데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아파트 단지와 공원입니다.
‘가까운 곳을 놔두고 해마다 먼 곳을 동경하는 거야.’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고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밤 꼬마전구를 무더기로 밝힌 것처럼 눈이 부십니다. 나무 밑에서 눈이 하늘을 향하자, 샹들리에 밑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벚꽃을 감상하는 사이사이 새싹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꽃 못지않게 눈을 뜬 새싹의 모습과 색깔이 갓난아기의 보드라운 피부 같습니다. 코를 가까이 대면 아기 냄새에 취할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쑥 나왔다 쑥 나물, 화살 같다 화살나물(홑잎 나물), 쓰고 쓰다 씀바귀나물, 부지깽이나물, 민들레 나물…….”
“냉이 나물은 없어요?”
“에고, 꽃이 핀 지가 언제인데.”
냉이를 가리켰습니다.
“꽃 같지도 않네.”
“멸치도 생선이라고 하는데…….”
“올해의 벚꽃 구경은 이것으로 충분해요.”
나는 화살나무 잎을 따서 입에 넣고 씹었습니다. 여린 잎의 맛이 여리게 입안에 감돕니다. 벚꽃 잎도 입에 넣었습니다. 봄이 어우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