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08. 다름에 대해서 20230608

by 지금은

나는 오늘 모임에 홍일점입니다. 십여 명 중에 나만 성별이 다릅니다. 수업 시간에 딱 맞게 강의실에 입장했습니다. 모두 가져온 도화지를 펼치고 작업에다 열중입니다. 어느새 수업 계획의 절반이 되었습니다. 모두 10회 차인데 오늘이 5회라고 합니다. 빠릅니다. 3회인가 했는데 말입니다.


전 주까지만 해도 그림책의 주제를 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고심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어느새 가제본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이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계획이 되어 있었습니다. 작년에도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전에도 그랬습니다. 올해도 그림책 제작이 있을 거라는 예감에 틈틈이 구상을 한 결과 줄거리와 내용을 정리한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여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 걱정은 그림에 자신이 없습니다. 해마다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때마다 작업이 끝나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기능을 익혀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손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미리미리 연습을 해둘걸.’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을 드는 격입니다.


내용을 스케치하며 슬며시 주위를 둘러봅니다. 아직 구상하지 못해 절절매는 사람도 몇 있기는 하지만 옆 사람과 장애를 가진 사람의 솜씨가 눈에 뜨입니다.


몇 장 그려온 그림이 내 눈을 현혹합니다. 얼굴을 가까이하고 붓을 놀리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예사롭지 않습니다.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하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만 가야지.”


“벌써 가시려고요, 급한 볼일이라도…….”


옆 사람이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너무 잘 그려서 함께 하기에는 먼 당신.”


농담인 줄을 안 그들은 잠시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자리에 앉아 색연필, 수채화 물감, 매직펜…… 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느 재료를 사용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어린이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집중적으로 살폈는데 재료마다 특징이 있고 표현된 솜씨들이 하나같이 내 마음을 현혹합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딱히 하나를 정할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갈팡질팡한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오늘은 한 가지 자료를 이용할 게 아니라 물감, 매직, 색연필 등을 골고루 혼합해서 연습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연습이라 생각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마구마구 손을 놀렸습니다.


“색연필인데도 수채화 같은 느낌이 나네요, 군데군데 유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앞사람이 칭찬인지 위로의 말인지 분간할 수 없는 칭찬을 합니다.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책의 줄거리를 말로 설명하며 틈틈이 조언을 구합니다. 책상 위를 보니 연습할 준비물이 없습니다. 나는 그에게 종이를 이십여 장 내밀었습니다. 연습하기 위해 규격에 맞게 잘라놓은 것들입니다. 생각지 못한 일에 고마워합니다. 말의 표현은 없지만 수줍은 그의 눈이 말해줍니다. 끝날 무렵이 되자 예닐곱 장의 스케치가 쌓였습니다. 그림 솜씨가 있군요.


작년에도 줄거리를 정하지 못해 여러 주 동안 쩔쩔매더니만 내용이 정해지자, 일사천리로 가제본 책을 완성했습니다. 올해도 같은 과정이 되리라 추측이 됩니다. 나는 몇 장면을 그려봤지만, 생각같이 되지 않습니다. 슬그머니 일어나 책상 사이를 지나며 그들의 연습 장면을 살폈습니다. 스케치의 모습이 내 것과는 비교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나보다는 한 수 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가방을 챙겼습니다. 오늘은 연습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활동 모습을 참관했습니다. 재료의 사용과 그 기법을 눈여겨봅니다. 두 명은 수채화 물감을 잘 다룹니다. 여러 장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칠합니다. 조급함이 없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완성되지 못한 스케치를 완성하고 수정하기도 합니다. 색연필, 사인펜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두름이 없습니다.


‘맞아, 내가 배워야 할 점.’


물론 기능도 습득해야겠지만 차분함이 일을 그르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행동을 보며 차분하다고 말하지만 내 속내는 그렇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세심함이 부족합니다. 채색할 때는 차분함도 뒤지지만, 특히 끝마무리가 간결하지 못합니다.


배움은 끝이 없습니다. 배움에는 지식도 있지만 생활 방식이나 태도도 있습니다. 나는 지식을 중요시하지만, 이제는 그보다는 생활 태도를 읽으려 합니다. 이 나이가 되었어도 사람들로부터 배울 게 많습니다.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삼사십 년은 어린 젊은이들입니다. 나는 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세대 차이만큼이나 그들에게서 얻을 것이 많습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삶의 방식들입니다. 그들도 나에게서 얻을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겪지 못한 옛 생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요즘 느끼는 것은 다름입니다.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있고 부족한 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동안 무엇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는가에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나는 그림에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독서와 글쓰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요. 주제를 정하면 줄거리나 내용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만들어 갑니다. 지금 내 주위의 사람들은 글쓰기보다 그림에 관심이 많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서로의 다름입니다.


나는 그림책의 주제와 내용을 정리한 게 몇 작품 있습니다. 옆 사람을 힐끔 곁눈질했습니다.


“우리 공동 저자로 책을 만들면 어떨까요. 누구 글, 아무 아무개 그림이라고.”


선 듯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서먹하고 마음을 읽지 못한 상태입니다. 서로 조화를 이룬다면 더 나은 책이 되지 않을까, 다름의 조화가 결과를 배가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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