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13. 나도 명강사 20230614

by 지금은

‘나도 명강사가 되고 싶다.’

그동안 교단에 선지가 40여 년, 그 밖에도 각종 모임에서 발표의 기회가 있다 보니 강단에 서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강의를 끝내고 나면 뭔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때로는 흡족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몇 퍼센트의 아쉬움을 안게 됩니다. 그밖에 강의는 이런저런 이유로 매우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가르치는 일은 많이 안다고 잘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자료준비를 철저히 하고 강의 순서와 방법을 여러 차례 수정하며 고민했지만, 아쉬운 결과에 뒤끝이 오래 남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청중들이 의외의 반응을 보일 때입니다.

나는 모임에서든 개인적인 만남에서든 이야기를 끌어가는 재주가 부족합니다. 한마디로 말 자체에 대해 서툽니다. 중간에서 상대의 말을 끊는 경우가 있어 고쳐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아! 놓쳤습니다. 내가 말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다 보니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을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소에 느끼는 감정이지만 맛 갈 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변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고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보다 유머나 재치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오기에 헤어진 후 책방에 들렀습니다.

‘유머집’

집으로 돌아와 읽었습니다. 모임에서 막상 써먹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기회라는 게, 분위기라는 게 다 때와 장소가 있게 마련이어서 단편 지식으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특별한 재주라는 생각에 어느덧 잊고 말았습니다.

‘나도 명강사.’

평생학습관의 학습 프로그램에 낯선 강좌가 보입니다. 관심이 갑니다. 나도 명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강의를 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강사의 강의 계획서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게시 글이 없습니다. 대신 강의 방법을 알려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내 마음대로 했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달력에 수강 신청 날을 표했습니다. 기대하고 신청했는데 인기가 있나 봅니다. 인원 초과라서 며칠 후 인터넷으로 추첨할 거라는군요.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걱정이 됩니다. 내가 무엇을 주제로 강의를 해볼까? 강사와 수강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강사는 내게 어떤 조언을 해줄까. 기다리는 동안 꿈속에서 기와집을 여러 채 지었습니다.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떨어졌습니다. ‘여우와 신포도’의 이야기처럼 뭐 별거 별거 있겠어하고 스스로 위안했습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는 거니까.

다음 날 내 차례가 왔습니다. 알고 보니 많은 사람이 수강을 포기했습니다. 강사 스스로가 자책합니다.

“너무 어려운 숙제를 냈나 봐요.”

틈틈이 토의와 토론의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했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의 속내를 내보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를 드러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남 앞에 서는 일이 직업이고 보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못 찾아왔군요.’

그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명강사입니다. 나를 명강사의 길로 인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학습계획을 살펴보니 내가 강단에 서보아야 할 일은 없습니다. 그의 지시에 따라 토론이나 토의하는 게 전부입니다. 오늘의 강의를 끝내며 소감을 물었습니다.

주제가 ‘나도 명강사’라기에 코치를 받고 싶어서 왔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고 했더니만 몇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다며 동의했습니다. 강사는 강사대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의 말이 자기 생각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어느 책을 읽었습니다. 글은 낯섦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글쓰기는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날이 그날, 매일 똑같은 흐름인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다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다름이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구름이 그 구름이지 뭐.’

나는 가끔 하늘에 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가을 하늘에 나타나는 그림입니다. 그 구름이 아닙니다. 낯선 동네를 구경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고개를 들었다가 아예 하늘을 향해 벤치에 한동안 누웠습니다.

강사의 강의 계획과 내 생각이 완전히 어긋났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말에서 나와 다른 삶을 발견합니다. 나를 코치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나름대로 그의 강의 방법을 습득해 보려고 주시합니다. 간접 경험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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