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19. 딱지치기

by 지금은

호야는 분합니다. 어제 딱지치기를 했는데 모두 잃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하니 기분이 몹시 나쁩니다. 한두 장을 잃은 것도 아닙니다. 서른네 장이나 됩니다. 그중에는 왕 딱지도 있습니다. 호야가 아끼는 왕 딱지는 좋은 것입니다. 크고 무거워서 동네에서는 아무도 넘기지를 못했습니다.

‘자식 반칙을 해서.’

떼를 써 보았지만 춘식이가 돌려줄 리가 없습니다. 제 형이 입는 옷을 입고 와서는 단추를 풀어헤쳤습니다. 넓은 소매로 바람을 일으켜서 왕 딱지를 따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호야는 딱지를 열심히 접었습니다. 집안을 뒤져봤지만, 그동안 있는 종이를 모두 딱지로 접어서 마땅한 게 없습니다. 할 수 없이 강변에 사는 재식을 찾아가 종이를 얻어 왔습니다. 재식이네는 종이가 많습니다. 도시에서 전학을 왔는데 친구가 없습니다. 친절하게 대하자, 호야만 보면 좋아합니다. 집으로 가서 놀자고 늘 조르지만, 그동안 재식이네 집에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왠지 가기가 싫었습니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호야는 책보자기를 방에 내려놓고 춘식이를 불렀습니다.

“딱지치기하자.”

“좋지.”

어제 딱지를 많이 따서 기분이 좋은지 의기양양합니다. 어제와 같이 인식이의 옷을 입고 왔습니다. 물론 앞자락도 풀어헤쳤습니다.

“너의 형 옷을 입고서 하면 안 되는데.”

“싫으면 그만둬.”

춘식이가 배짱을 부립니다. 내려놓았던 딱지 상자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래 좋아.”

“진작 그렇게 말해야지.”

호야가 딱지를 대자 춘식이가 소매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풀썩 넘겼습니다. 눈 깜짝할 순간입니다. 조금 큰 딱지를 놓자, 이번에도 바람을 일으키며 금방 넘겼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림없지.’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아홉, 열, 열하나. 힘이 들었던지 열한 장 째게는 못 넘기고 겨우 멈췄습니다. 호야는 약이 올라 춘식이의 딱지를 향해 있는 힘껏 딱지를 휘둘렀지만 풀썩하고 바람만 일으키고 그만입니다. 다시 춘식이의 손이 움직이자, 딱지가 넘어갔습니다. 어느새 스무 장도 더 잃었습니다. 호야는 속이 상했습니다.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호야의 딱지는 점점 줄어듭니다. 이제는 몇 장 남지를 않았습니다.

“치사하게 형 옷을 입고 딱지 따먹기가 어디 있니?”

“내 맘이지, 싫으면 그만둬.”

배짱을 부립니다. 그럴수록 호야의 속은 타들어 갑니다.

‘나쁜 놈, 어디 두고 보자.’

호야가 있는 힘을 다하여 딱지를 휘둘러 댔지만 춘식이가 다 따 버렸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왕 딱지밖에 없습니다. 재식이가 준 종이 중 제일 크고 두꺼운 종이를 두 겹이나 겹쳐서 만든 큰 딱지입니다. 어제 잃은 왕 딱지보다도 한 배 반이나 큽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딴 왕 딱지를 가져오는 건데.”

춘식이가 왕 딱지를 따려고 열심히 손바람을 냈지만, 호야의 왕 딱지는 넘기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땄다 잃었다 땄다 잃었다 연속입니다. 호야는 왕 딱지로 휘둘러 많이 따고 싶지만,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마저 잃는다면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최후로 왕 딱지를 사용하고 딱지를 한 장 따면 그 딱지를 이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엔 잃었다 땄다만 서로 반복합니다. 시간이 지나자, 춘식이가 지쳤는지 내일 다시 하자고 말하고는 돌아갔습니다.

‘자식 저의 형 옷만 안 입고 오면 문제가 없는데.’

춘식이가 돌아가자, 호야는 삼촌의 윗도리를 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곧 딱지를 가지고 연습했습니다. 춘식이가 하는 것처럼 바람이 쉭쉭 나지를 않습니다. 내일은 틀림없이 딱지를 도로 찾아야 합니다. 왕 딱지를 생각하면 속이 상합니다.

해가 지고 저녁을 먹고 나자, 달이 동산 위에 떠올랐습니다. 호야는 마당으로 나와 딱지치기 연습을 합니다. 물론 삼촌의 윗도리를 입고 말입니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말했습니다.

“호야야, 책 읽어야지.”

“예, 금방 들어가서 할게요.”

호야의 머릿속에는 엄마의 목소리가 잠시뿐입니다. 밤늦게까지 딱지치기 연습을 했습니다. 이제는 제법 바람이 잘 일어나서 왕 딱지도 잘 넘겨집니다.

‘자식 뽐내더니, 내일은 혼 좀 나 봐라. 춘식이 네 딱지는 모두 내 것이니까.’

호야는 숙제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호야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춘식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히 마당에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말입니다. 춘식이네 마당으로 가 보았지만 역시 없습니다.

“춘식아.”

“왜?”

“딱지치기해야지.”

“이제는 재미가 없어.”

춘식이가 방문을 닫고 딱지를 세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삼백 아흔아홉, 사백, 사 백열 둘.”

“춘식아, 딱지 먹기 약속했잖아.”

“책 읽고 숙제해야 해.”

“끝나고 하자.”

“바빠서‧‧‧‧‧‧‧.”

“뭐가?”

“그냥.”

‘나쁜 자식, 내 딱지 다 따 가고서 약속도 안 지키고 어디 두고 보자.’

호야가 시무룩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딱지 다 잃었구나.”

삼촌이 눈치를 채고 물었습니다. 대답하기가 싫었습니다.

“며칠만 기다려 봐, 춘식이 딱지는 모두 네 것이 될 테니까.”

하지만 마음이 급해서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자식 어디 두고 보자, 춘식이 너하고는 안 놀아.’

춘식이가 담 너머로 호야를 내려다보며 입을 쏙 내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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