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공놀이 20230617
‘아흔아홉, 백 one hundred, hundred ninety nine, two hundred……. 공을 차는 동안 영어로 숫자를 세기도 합니다. 영어 숫자에 익숙해지기 위함입니다.
요즘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공을 찹니다. 운동선수를 꿈꾸는 것은 아니고 몸을 움직여 건강을 유지하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오늘은 모처럼 아내와 음식점에 들려 때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건강하던 그녀가 갑자기 감기에 걸렸습니다. 함께 병원에 들렀다 집으로 올 때는 일부러 거리를 늘려 수변공원으로 돌았습니다. 날씨가 좋고 신선한 바람이 붑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 빨리 회복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방안에 머물기는 바깥 날씨가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느 때처럼 공을 들고 놀이터로 갔습니다. 잠시 벽을 상대로 공을 차는데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왔습니다.
“할아버지, 여기서 공차도 돼요?”
“그럼.”
좁은 공간이지만 차던 공을 멈추고 곧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할아버지 공으로 차도 돼요?”
“마음대로.”
자신들의 손에 들려 있던 공을 내려놓은 채 내 공에 발을 가져대 댔습니다. 몇 번 차보던 아이들은 편을 가르며 나도 함께하기를 요청했습니다. 내가 들어가야 편을 짤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골키퍼 하세요.”
그들이 하라는 대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공을 찹니다. 몇 차례 상대방의 공을 막아냈습니다. 의외라는 표정입니다. 그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키퍼 할 테니까 공격하세요.”
역할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공이 이리저리 춤을 춥니다. 뺏기고 빼앗는 순간이 이루어집니다.
“와, 할아버지 진짜 잘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찬사입니다. 그동안 내가 공을 잘 찬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그렇게 비쳤을 뿐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내가 그동안 공과 논 시간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많이 놀았어야 잘할 터인데 지금의 실력은 벽과 마주 보고 하는 공치기뿐입니다. 생각해 보니 팔 개월 남짓입니다. 여덟 달은 매일 공을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침저녁으로 합해서 매일 천여 개의 발길질을 했습니다. 그나마 효과가 있었는지 그들이 차는 만큼의 발재간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드리블과 패스, 슛도 했습니다. 중학년 정도의 아이들이라서 함께 어울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어울리는 동안 내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혼자 움직일 때보다 몸놀림도 커졌다는 느낌입니다. 어느새 등줄기를 타고 땀이 맺히는 느낌이 듭니다.
갑자기 공이 멈췄습니다. 한 아이가 코를 잡은 채 주저앉았습니다. 상대편이 찬 공이 순간적으로 날아와 수비수의 코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코피가 나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아이가 가방을 열었습니다. 휴지를 찾는 모양인데 없습니다. 나는 아파트 주민 전용의 무인 카페를 가리켰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콧구멍에 도르르 말린 휴지가 꽂혀있습니다.
“할아버지 시작해야지요.”
한 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다음에 또 하자는 말로 놀이를 끝냈습니다. 두 아이는 발재간이 좋습니다. 또래에 비해 가냘픕니다. 하지만 공을 다루는 솜씨가 단연 돋보입니다. 학급 대항전이라도 열린다면 반의 대표선수로 뽑힐 게 분명하다는 느낌입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매일 혼자 공을 만졌는데 아이들 스스로 찾아와 함께 놀아주었습니다. 더구나 칭찬까지 들었으니,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마저 즐겁습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낳기도 하나 봅니다. 아이 엄마가 지나가다 멈췄습니다. 눈에 익습니다.
“어르신 축구선수 하셨다면서요. 그래서 매일 공을 차시는구나.”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말했어요. 공을 잘 차신다고요.”
“아, 아까 그 아이군요. 발재간이 여간 아니던데, 공을 빼앗아 보려고 신경을 좀 써봤습니다.”
“축구신발을 사준 보람이 있나 봐요.”
“전해주세요. 같이 공을 차고 싶어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