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17. 세 번의 낯선 이별 20230616

by 지금은

“만나지도 않은 사람과 이별을 해본 거야.”

“그렇게 됐어.”

“가당키나 한 일이야.”

살다 보면 별일이 있고 뜻하지 않은 경우도 있게 마련입니다.

산 사람에게 문상을 한 일이 있습니다. 지나고 생각하니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 당시만 해도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잊고 지냈습니다. 절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비슷하고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다 보니 호형호제는 하지 않았어도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이입니다.

내가 다니던 직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원에 의한 일이지만 현재의 근무지에서 먼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동두천에서 인천으로의 이동입니다.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갑작스러운 발령에 근처에 사는 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작별 인사입니다. 막 집에 들어서는데 그 사람이 나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부친이 한동안 병원에 입원했는데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답니다.

“갑자기 발령받아서 예고도 없이 인사차 왔습니다.”

그도 잠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지금 헤어지면 당분간 만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조의금을 챙겼습니다. 봉투에 ‘쾌유를 빕니다.’ 하고 썼으면 좀 나았을 걸 왜 하필 ‘부의’라고 썼을까. 그냥 아무런 기록도 없는 봉투면 더 좋을 거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 마음이 조급했던 모양입니다. 받지 않겠다는 것을 잠시 옥신각신하다가 봉투를 넘겼습니다. 그도 마음이 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부친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 수가 없습니다.

“일이 공교롭게 되어 작별주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쉬운 얼굴을 보이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다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중학교 때의 일입니다. 이 무렵 남녀 사이에 펜팔이 유행했습니다. 우연히 학생잡지를 보다가 펜팔을 원하는 사람들의 주소를 적은 페이지를 발견했습니다. 몇 달이 지난 잡지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쪽 섬지방의 여학생에게 글을 써 보냈습니다. 한 달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기에 잊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동생이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모르는 사람한테서 편지가 왔네.”

나는 비밀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재빨리 편지를 낚아챘습니다.

“이상한데.”

동생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습니다. 편지 봉투를 뜯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주머니에 감췄습니다.

그 후 서신 교환은 근 일 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비록 만남은 없었지만, 다정한 친구처럼 가끔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춘기의 고민이나 각자 서로 다른 고장의 삶에 대해 나름으로 장단점을 말했습니다.

“우리 당분간 그만하기로 하지요. 고등학교에 가서 다시 만남을 이어갑시다.”

누가 먼저 이별을 통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구실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쉼이라고 했지만, 알아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호기심이 반감되었는지 모릅니다. 만남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서신만으로 마음을 이어간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나 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대부분 사람이 우리처럼 끝을 맺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펜팔로 맺어진 우정이 끝내 사랑으로 이어져 가정을 이룬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런 사람을 본 경우는 아직 없습니다.

특이한 이별이 또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친구가 죽었다는 기별입니다. 한동안 병원에 있었는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더니만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동창생들이 모두 모이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멀다는 생각에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보니 친구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망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문상 장소로 갔습니다. 유가족이 다가왔습니다.

“문상객이 많으니, 친구들이 오면 함께 조문하겠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친구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화장실을 가는 척하고 복도로 나가 망자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망자의 이름이 아니라 상주의 이름입니다. 동명이인입니다. 어쩌지요. 조의금은 이미 함에 넣은 상태입니다.

어쩔 수 없이 조문 대신 사실을 말했습니다. 상주도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인연도 없는 사람의 사진을 보는 순간 다시 이별해야 했습니다.

“왜 이리 늦은 게야.”

“그럴 일이 있었어.”

친구들의 말에 계면쩍은 웃음을 흘렸습니다.

이번에는 진짜 이별해야겠습니다. 고별이라고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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