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노년의 삶, 무엇을 얻을 것인가? 20230618
구름이 흐린 것은 맑음의 징조요, 구름이 진한 것은 비가 올 징조입니다. 인생살이가 그렇습니다. 모자가 필요하고 우산이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추웠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두꺼운 옷이 있어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곧 몸에 걸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떨어야 했습니다. 세상살이 뭐 그런 게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어제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시골의 작은 학교의 졸업생이니 숫자도 적었습니다. 열두 명이던 회원 모임이 여덟 명으로 줄었습니다.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만 두 명은 세상을 달리했고 두 명은 모임이 재미없다고 탈퇴했습니다. 자식을 다 여의고 보니 참석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나 봅니다. 회비를 관리하는 친구가 섭섭함을 표합니다.
“젊을 때는 천방지축으로 술과 노름에 빠지더니만 이제는 집 한 칸 없는 신세가 되었지.”
서울을 떠나 낯선 시골로 가더니만 외로운지 찾아왔으면 하는 눈치를 보였다고 합니다, 돈 관리를 오래 하다 보니 친구들의 작은 말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있습니다. 늘 정확성을 강조하기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를 믿기에 오랫동안 회비 관리를 맡겼습니다.
혹시나 금전에 대해 까다롭게 해서 그들 탈퇴를 했나 하는 자격지심이 드는 모양입니다. 오늘은 부부 동반 모임으로 정했는데 세 팀만 나왔습니다. 나머지는 홀로 참가했습니다.
“탈퇴, 부부 동반 신경 쓰지 마라.”
“그려, 나와 준 게 고마운 거야.”
이번 모임은 부부 동반이니 함께 참석하는 게 어떠냐고 아내에게 말했지만 ‘이 강추위에’하는 말로 거절했습니다. 한동안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더 이상 조르지 않았습니다.
“신경 쓰지 마라. 이제는 흐르는 물을 따라가는 거야.”
가끔은 잔잔한 물결이 일렁일 때도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친구의 문병을 하였습니다. 풀 죽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우리를 보자 밝은 얼굴입니다. 항문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 그는 사색이 되었습니다. 건강하던 몸에 이상이 왔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씩씩하던 그가 완전히 풀이 죽었습니다. 동창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는데 암이라는 판정을 받은 이후로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 하는 거야. 친구 좋다는 게 뭔데, 불알친구잖아.”
건강하다고 늘 큰소리 뻥뻥 쳤는데 창피하답니다.
모임에 한동안 나오지 않으니 찾아가는 것도 염려가 되었습니다. 만나기 싫은 것의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닌가 생각이 되었습니다. 문병은 해야 하는데 상대방은 극구 거절했습니다. 다만 가끔 안부 전화를 할 뿐입니다. 모일 때마다 친구 건강에 대한 염려와 함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의논했습니다. 그의 맘이 돌아서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지만, 일 년이 다 돼가도록 만남을 꺼립니다.
안 되겠습니다. 이러다가는 얼굴 한 번 못 보고 이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할 때마다 괜찮아질 것 같다며 항암치료를 하는 중이랍니다. 나중에는 전화를 받는 것도 싫어하는 눈치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중구난방으로 안부를 묻는 것보다는 가장 가까이 지내는 친구에게 일임하고 우리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하지만 얼굴을 보지 못하니 친구의 전하는 말만으로는 건강 상태를 알 수가 없습니다.
실례가 되든 아니든 무조건 쳐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한 시간 전에 그의 집 근처에 모여 전화했습니다.
“야 인마,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실례가 될지는 모르지만, 친구들 모두가 찾아가기로 했다. 이제는 죽고 헤어지고 몇 놈이나 남았냐. 남은 인생 어찌 되었든 얼굴은 보고 살아야지. 너는 죽은 친구들 병원에 있을 때 자주 찾아갔었잖아.”
우리가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도 아내도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았습니다. 생각과는 달리 명랑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죽지 않는 그의 태도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자식아,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아프다고 방구석에만 있어서 되겠냐.”
“똥통을 옆구리에 찬 게 뭐 자랑이라고. 하지만 잘되면 없어도 된대.”
“우리는 밖에 나가면 어디에다 쌀까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너는 당분간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 좋겠다.”
허물없는 사이니 농담 반 웃음 반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내는 고마운 마음이 역력합니다. 무언가 대접을 하려고 분주합니다.
“대접받으려고 온 거 아니니 자리에나 앉으세요.”
우리가 밖으로 나오자, 아내가 슬그머니 코너를 돌아 배웅합니다.
“고마워요. 창피해서 안 만나겠다고는 해도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어요.”
친구는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서서히 안정을 찾아갑니다.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과정이 그런가 봅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또는 왜 우리에게만 이런 일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고 좌절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결과를 인정하고 서서히 안정을 찾아갑니다. 주위를 돌아봅니다. 이제야 삶이란 게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쯤은 내보이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를 안고 살아갑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숲 속에도 제각각 나무의 아픔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친구가 건강을 되찾고 함께 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