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24. 단오 20230622

by 지금은

“완두콩 맛이 들었을 텐데.”

“어떻게 알아요?”

“생각을 해보니까.”

앵두가 익었고 보리수도 익어갑니다. 엊그제 공원을 지나다가 학교 울타리 부근에 심겨있는 앵두 몇 알고 보리수를 맛보았습니다. 추억은 잊을 수가 없나 봅니다. 이맘때면 고향마을 이웃집 앵두를 울타리 너머로 살금살금 따먹던 순간, 꽤 먼 거리임에도 홀로 샘골 밭둑에 우두커니 서 있는 보리수나무를 찾아간 일. 집 앞의 뽕나무밭에서 뽕잎을 따는 대신 오디를 먹는 재미에 앞자락이 흉하게 물드는 것도 모른 채 재미에 빠졌던 오후 한나절.

어느새 더위를 느끼는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요 며칠부터 덥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달력을 보니 어제가 하지(夏至)이고 오늘은 단오(端午)입니다. 하지는 하루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날입니다. 이와 달리 동지(冬至)는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입니다.

오늘은 단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내가 유년 시절만 해도 단오는 중요하게 여기는 날이었습니다. 이날은 설날, 한식, 추석만큼이나 큰 명절로 여겼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농사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이날만큼은 일손을 놓고 놀이를 즐겼습니다.

부녀자는 아침 일찍부터 창포물에 머리를 감았습니다. 일 년 내내 머릿결이 좋아진답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습이려니 했는데 그 근거가 있었습니다. 창포 속에는 타닌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 모발의 손상된 부위로 스며들어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날은 다른 명절처럼 하루를 놀며 즐기는 날입니다. 지금은 설날이나 추석에 비해 명절의 의미가 퇴색되었습니다. 지금의 세대는 단오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강릉입니다. 국가에서는 단오의 축제를 이어가고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2005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올렸습니다.

전통사회에서의 단오제 풍속은 더운 여름철의 건강을 유지하는 선조들의 지혜와 신체 단련을 위한 놀이 그리고 풍년을 소망하는 의례 등이 있습니다. 마을마다 수호신에게 공동체 제의를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지역민들의 일체감을 고취하고 마을의 풍년과 화복을 빌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강릉단오제는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단오제가 맥을 이어온 것은 노인과 무녀들이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소규모일망정 행사를 치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강릉단오제는 단옷날을 전후하여 산신령과 남녀 수호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단오굿, 전통 악과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 시 낭송 및 다양한 민속놀이를 엽니다.

나의 유년 시절 만해도 단옷날이 되면 면사무소 옆 초등학교에 놀러 가곤 했습니다. 동네별로 모여 축제를 벌였습니다. 여자들은 그네뛰기, 남자들은 씨름했습니다. 앵두 맛은 이미 보았고 수리취떡을 먹고 싶습니다. 며칠 전부터 서울 구경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내에게 수리취떡 이야기를 했지만, 반응이 시원치 않습니다. 단오 자체를 알지 못합니다. 고궁이나 민속촌에서는 조촐한 행사가 이어질 것입니다.

‘잘하면 떡을 먹을 수 있는데’

생각으로 끝을 내야 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달력을 보니 내가 참석해야 할 곳이 두 군데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시와 그림이 만나는 철학 강의’가 있고 평생학습관에서는 ‘서평 쓰기 강의’가 있습니다. 뒤로 미루는 대신 입맛만 쩝쩝 다셨습니다.

갑자기 할머니의 심부름이 떠올랐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자, 말씀하셨습니다.

“어서 가서 대추나무 시집보내고 오너라.”

“나무를 어떻게 시집보내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로,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놓아 많은 열매가 열리기를 바라는 민간 신앙적인 관습입니다. 이 풍습은 특히 정월 대보름이나 단오 무렵에 실시되며, 이 시기에는 대추가 막 열리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대추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고도 불립니다.

그 후 나는 할머니가 시키지 않아도 시골을 떠날 무렵까지 대추나무 시집을 보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감나무나 밤나무도 시집을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는 종종 돌이 끼어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감나무, 대추나무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시집을 잘못 보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의 설명을 듣고 사립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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