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문상 20230711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벼르고 별렀던 말을 밖으로 보이는 순간입니다. 상주의 어색한 얼굴을 마주합니다. 늘 그러하듯 상가의 표정은 밝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문상객이나 상주나 어색한 분위기에서 인사를 나눕니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에 또 이별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친하든 친하지 않든 간에 다시는 못 볼 단절의 시간입니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상가에 가는 일이 무척이나 곤욕스럽습니다. 분위기 자체에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인사에 관한 일입니다.
‘어떤 말을 해야 좋지?’
결혼식, 생일, 입학식, 졸업식 등 좋은 분위기라면 다소 어긋나는 말이거나 농담이라도 웃어넘길 수 있겠으나 상가에서만큼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전날 동창의 장모님이 별세했다 연락을 들었습니다. 잠자리에서 깬 새벽에는 이종형의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틀 연속 부음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오늘은 종일 마음이 무거울 것 같습니다. 형님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곧 달려가고 싶었으나 다음 날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우선 친구의 연락을 먼저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오전에는 병원에 들러 혈액 검사를 해야 합니다. 작년부터 내 체력이 급격히 하향곡선을 그립니다. 몸무게가 줄고 몸의 움직임이 둔해짐을 느낍니다. 떨어지는 몸무게를 올려보고 체력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에 공차기를 더해서 아침저녁으로 몸을 놀립니다. 걷기가 지루하다 싶을 경우를 대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보니 걷기의 지루함이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입에 맴돌던 인사말입니다. 왠지 어색하다는 생각에 문상을 가면 꼭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상주 앞에서 늘 묵례와 함께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말을 입 밖으로 내보이고 우물우물 어물쩍대며 장소를 벗어났습니다.
‘왜 그렇게 어려운지, 이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도 있으련만……’
한 번 입에서 내뱉기는 어려워도 일단 말을 하고 보면 다음에는 좀 수월하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은 병원에 들러서 내 건강을 확인한 후 형님의 빈소를 찾을 생각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면이 있는 이종형제와 조카들 앞에서는 이 말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딱딱한 말보다는 부드러운 말이 더 좋겠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금방 털고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동안 만남과 소식으로 근래 병의 위중함을 알고 있었지만, 평소 씩씩했던 그이기에 병마를 이겨내기를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전화 통화가 되지 않으니, 문자로 용기를 북돋웠습니다. 곧 회복될 것이라며 매일 기도를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외삼촌 손자의 결혼식에서 형을 만났습니다. 전의 모습과는 달리 외양이 초라합니다. 튼튼해 보이던 그의 골격은 어디로 가고 왜소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얼마 전 택시를 기다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져 기절했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눈을 떠보니 자신이 왜 이곳에 와 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답니다. 서로 건강을 염려하며 헤어졌습니다.
보름 후입니다. 갑자기 형님의 안부가 생각나 전화했습니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바쁜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음 날 다시 전화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통화를 할 수 없다는 알림입니다. 이삼일이 지나자, 아무래도 조바심이 납니다. 다시 전화하자 형수님이 대신 전합니다.
“의사의 진단 결과 최장암 말기라서 손을 쓸 수가 없답니다. 보존 치료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회복을 기대합니다.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어제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내 마음을 울립니다.
“함께 여행을 한 번 더 해야겠지.”
“좋은 곳을 찾아봐야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몇 차례 유럽 여행을 했고 코로나19의 유행 전에 코카서스 3국을 둘러볼 계획을 했습니다. 떠날 날을 일주일 앞두고 유행병의 확산으로 여행은 타의에 의해 취소되었습니다. 추억을 하나 더 쌓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동창의 장모님 문상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갑작스레 들것에 누워있는 사람의 형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흰 천인지 비닐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신을 감싼 사람의 형상입니다. 한 사람이 짐짝을 옮기듯 시체를 밀면서 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보기가 좋아 보이지 않네.”
“사고자이거나 행려자이겠지 뭐.”
“죽음도 죽음 나름이지.”
어찌 됐든 말없이 잠시 두 손을 모았습니다.
‘힘들겠지만 여행길 잘 가시게.’
어두워진 길을 되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