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31. 폭우 20230712

by 지금은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말 걸 그랬나.’

이종형의 장례식장에 가야 합니다. 우중충한 날씨입니다. 밖은 비가 오는 듯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중에는 우산을 받쳐 든 이가 한 명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빈 몸으로 내 눈을 스쳐 갑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우산을 준비했습니다. 역전에 이르는 동안 가로수 밑을 지나기도 했는데 나뭇잎에 내린 빗방울이 머리 위로 낙하했습니다.

일기예보에는 서울을 비롯한 중서부 일대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가 내린 상태입니다. 내가 밖을 잠시 나갔을 때 비만 멈출 수 있다면 우산은 필요가 없습니다. 먼 거리라고는 하지만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관계로 전철 속에 머무는 동안은 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동안 자연스레 비에 대한 생각은 접었습니다.

‘비가 오면 얼마나 오겠어.’

역전에서 장례식장은 5분 거리로 예측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지도를 검색한 결과입니다. 목적지의 역에서 내렸습니다. 통로를 나오자, 우산을 든 사람들이 역사 안으로 내려옵니다. 하나같이 우산이 물기에 흠뻑 젖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음이 짐작됩니다.

“지금 집에 있는 거야?”

“아뇨, 지금 역 입구에 있는데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차도가 물에 잠겼어요.”

양동이로 퍼붓듯 비가 내립니다. 40분이나 갇혀있는 중입니다. 몇몇 사람도 퍼붓는 비에 발길을 내디딜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밖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래.”

믿기지 않는 눈치입니다. 올 사람이 오지 않으니 궁금하셨나 봅니다.

안 되겠다는 마음에 그냥 발길을 옮기자고 아내를 재촉했습니다.

“그럼,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어요.”


차도는 퍼붓는 비에 발목을 적실 정도로 물이 흥거니 괴어 갈 곳을 잃었습니다.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렸습니다.

문득 어렸을 때 시골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리면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고무신을 손에 들었습니다. 곧 원하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면 걸어가거나 달려가거나 비에 젖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 소나기를 만났는데 마땅히 피할 곳이 없습니다. 무작정 뛰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옷이며 책보자기가 물탕이 되었습니다. 옷보다 중요한 게 책보자기입니다. 옷을 벗는 것과 동시에 보자기를 풀었습니다. 책이 비에 젖어 색이 짙어졌습니다. 젖었다고 말하기보다는 물속에 담갔다 꺼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방바닥에 책을 펼쳐 널었습니다. 밤새 따뜻한 방에서 책이 말랐습니다. 부풀어 오른 책은 원래의 제 모습을 일었습니다.

장례식장의 화장실에 들러 젖은 발을 닦았습니다. 양말을 신었습니다. 신발을 신었습니다.

“신발과 양말을 벗기를 잘했지요.”

다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빈소에 있는 동안 내내 흠뻑 젖은 물기에 마음이 쓰였을 겁니다.

이종 매제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비가 퍼붓는다면서요.”

“아, 우리 제주도 여행 중에 세찬 비로 인해 길가에 한동안 고립되었던 것 기억나요? 그때와 다를 게 없어요.”

“심했었지요. 운전할 수가 없었으니까.”

장례식장에 머무는 동안 계속 휴대전화에서 문자 알림이 들립니다.

‘영등포, 노량진 일대 70밀리의 폭우. 외출을 자제하고 위험에 대처하십시오.’

연로한 형수를 비롯하여 조카가 직장에서 퇴근 후 문상을 오기로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못 올 것 같습니다. 도로를 관리하는 조카는 직업상 태풍, 장마, 폭설 등의 급작스러운 기상 변화에는 비상근무를 하기가 일쑤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알렸습니다.

내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는 빗방울이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약속된 시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가 쏟아지면 역에서 기다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역을 나서자, 아들이 차를 몰고 와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어느새 문자를 보냈던 모양입니다. 빗방울이 가늘게 내립니다.

“서울에는 비가 말도 못 하게 쏟아진다면서요.”

집으로 돌아오자, 궁금해서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재산 피해는 물론 인명피해도 입었습니다. 몇 사람이 불어난 물에 고립되어 구조되기도 하고, 몇 명은 실종 또는 사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옛날에 비해 자연재해를 막는 노력이 지속된 결과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많이 줄었습니다. 4대 강의 정비는 환경론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되풀이되던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현격하게 줄였습니다. 이밖에도 재해 예방을 위한 여러 가지 시설을 만들고 국민들에게 일기예보는 물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문자나 안내 방송을 합니다. 사전 예방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큰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는 기후의 온난화로 인해 뜻하지 않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예가 홍수, 폭설, 태풍, 해일, 산불입니다. 전에 비해 강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 폭우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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