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이심전심 20230713
“숟가락을 엎어놓아도 되는 거야.”
직장에서 돌아와 보니 아내가 식탁에 저녁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식탁에 앉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후 몇 번인가 숟가락을 엎어놓는 게 맞느냐고 했지만,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드디어 터지고 말았습니다.
“숟가락을 엎어놓는 게 맞는 거냐고, 혹시 미신이라도…….”
아내는 이 말에 펄쩍 뛰듯 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무슨 미신을…….”
잠시 어색한 분위기는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나중에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의구심이 풀렸습니다. 숟가락을 엎어놓으면 기다리는 동안 먼지가 조금이라도 덜 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답니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어느 곳에서도 숟가락을 엎어놓은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익숙하지 못한 상태를 보니 잠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뿐이겠습니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삶은 서로를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종종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고 말씨름도 했습니다. 생각도 행동도 서로 대비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심전심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길었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아내는 이혼을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고 합니다. 나라고 뭐 달랐겠습니까. 서로가 이혼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가정을 이루어 함께한 반세기를 넘기는 순간에도 행동과 의견의 차이가 줄어들기는 했어도 아직도 남아있는 작은 습관이 우리를 신경 쓰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부부의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를 걸을 때입니다. 나는 늘 우측통행을 고집합니다. 어렸을 때는 좌측통행이 기본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우측통행으로 바뀌었습니다. 익숙해지기까지 한동안 우왕좌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주 오는 사람과 교차입니다. 왼쪽으로 비껴갈까, 오른쪽으로 비껴갈까. 어느 경우에는 시비를 거는 모양새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른쪽으로 비껴가려고 했는데 상대방도 같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마주칠 때가 되어서야 비켜서려고 했는데 그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놀이를 연상합니다. 수비와 공격이 주춤주춤 하는 모양새입니다. 결국 서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비껴갔습니다.
아내는 아직도 우측통행에 익숙지 않은 눈치입니다. 좁은 인도에서 상대편이 다가올 때면 어깨를 마주하고 가다가 대부분 사람은 한쪽 인도를 내어주게 됩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우측으로 비켜 가는데 아내는 종종 좌측으로 비껴갑니다. 한마디 했습니다.
“아니 가운데 길을 놔두고 양쪽으로 갈라서서야, 손님을 환영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 사람을 가운데로 보내는 순간 아내는 몸을 움츠리며 길가로 붙어 서면서도 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아니 아직도 우측통행을 몰라서야…….”
“그렇게 됐네요.”
하지만 이외의 경우는 함께하는 동안 마음이나 눈치만으로도 서로를 알아챕니다. 의식주입니다.. 예를 들어 국수를 먹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국수를 삶고 있습니다. 커피를 한 잔 사서 왔습니다.
“커피가 떨어진 것을 어떻게 알았어요. 먹고 싶었는데 잘 됐군요.”
여러 해를 함께 살다 보니 서로의 습관이나 기호가 모르는 사이에 닮아가는 모양입니다. 떡을 싫어하던 내가 떡을 좋아하게 되고, 결혼 전 커피라고는 입에 대지 않던 내가 매일 마셔야 하는 기호식품이 되었습니다. 아내도 내 기호에 적응한 것이 있습니다. 날 채소입니다. 늘 데치거나 익혀 먹어야 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덧 생야채를 좋아합니다.
옷은 어떻습니까. 나는 늘 칙칙하고 점잖아 보이는 색상을 고집했는데 아내의 의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옷 모양과 색깔의 조화를 생각하게 됩니다.
‘밝밝 어, 어어 밝’
밝은 색과 어두운 계통의 조합입니다. 아내의 말과 의상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며 내 날개에 대한 멋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밝고 좀 더 세련된 복장을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이제는 다툼이나 투정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아니,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맞아요, 그래요.”
웬만하면 서로의 감정을 수긍하고 살아갑니다.
한데 며칠 전에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모처럼 휴일을 맞아 대형 마트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생필품을 사서 계산대를 나왔습니다.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화장실 다녀와야겠어요.”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내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차장에 가 있을 거라고 하는 마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탔지만 차 앞은 썰렁합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5분여를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길눈이 어둡다 보니 그럴까 하는 생각에 더 기다렸지만 마찬가지입니다. 전화했습니다. 계산대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조금 혼잡스럽기는 했지만 나도 그도 서로를 보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평소보다 20여 분이나 늦었습니다. 길에 얽힌 일은 종종 있었으니 이만 생략해야겠습니다. 함께 살면서 대부분은 마음과 행동의 일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길에 대해서는 아직도 남아있는 숙제가 있습니다. 모든 게 일치한다면 한 몸이겠지요. 한 몸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생각을 달리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래도 이만하면 됐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늙으면 얼굴도 닮아간다더니만 생각이나 행동도 마찬가지겠지요. 그저 불평 없이 서로의 마음이 헤아려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