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인형 20230718
그림책 만들기를 공부하면서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인형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림책을 구상하다 보니 등장인물 동작의 형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연습 삼아 종이에 그려보았지만, 생각처럼 쉽게 표현되지 않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원하는 것을 이리저리 찾아봐도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인형 장난감 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관절 인형의 모형이 보입니다.
‘아, 바로 저거야.’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의 관절을 하나하나 만들어 조립하게 되어있습니다. 관절을 움직임에 따라 표현을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아내에게 털실에 관해 물었습니다. 퍽 오래전의 일이기는 해도 해도 아내가 내 스웨터를 떠준 일이 있습니다. 그때 쓰고 남은 실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버리지 않고 남아있나요.”
“버린 기억이 없으니, 어디엔가 있을 거예요.”
내가 인형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 무렵입니다. 삼촌은 무엇인가 만드는 재주가 있어 종종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인형 이야기를 하자 삼촌이 목각 인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6·25 사변이 몇 년 지난 때고 보면 꽤 오래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삼촌은 무엇인가 만드는 재주가 있어 종종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어도 관절 인형입니다. 몸통을 중심으로 머리와 팔다리가 분리됩니다. 꺾이거나 구부릴 수는 없지만 분리하고 결합을 할 수 있도록 꿰맞출 수 있습니다. 팔을 좌우로 벌리고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손안에 드는 게 앙증맞습니다. 모습은 그 하나이지만 분리와 결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 한동안 애지중지했습니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근처에 장난감 가게가 생각났습니다. 도매상입니다. 왜 그 가게가 한적한 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이곳인데 하며 주위를 살폈지만, 어느 곳에도 장난감 가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커피숍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허탈한 생각이 듭니다.
‘뭐 가게가 여기뿐인가?’
그동안 장난감 가게를 검색해 보았는데 내가 사는 고장에도 여러 곳이 있습니다.
아내에게 슬며시 동대문 장난감 거리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당장 필요하면 바로 살 것이지 그리 먼 곳까지 생각하느냐고 말합니다.
“서울 구경할 겸, 겸사겸사해서…….”
그림책을 만들다 보니 내 어려움의 첫 번째는 사람이나 동물들의 표현입니다. 모습이나 동작을 내용에 맞게 그리기가 어렵습니다. 생각대로 따라가면 좋으련만 아직은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관심을 두고 몰입을 해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만큼 점차 나아지리라 기대합니다.
마음에 드는 관절 인형 표본을 골라놓고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몇 달이 지났습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니 없는 시간이라도 내서 구입해야겠습니다. 인형의 관절을 움직이며 동작을 표현해 보고 종이에 옮겨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아내의 털실을 건네받아 실제로 인형을 만들어 볼 셈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 찰흙이나 헝겊으로 인형을 만들어 보았고 교직에 있는 동안은 아이들을 지도했습니다. 경험이 자신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내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그림책의 내용은 궁금증을 찾아가는 새끼 곰의 여행입니다. 주인공은 굴속의 모습에 호기심이 있습니다. 작은 굴이든 큰 굴이든 들여다보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굴을 찾아 쏘다닙니다. 개미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렁이와도, 두더지와도, 나무 굴속의 새들과 벌들의 생활에도 관심을 둡니다.
‘여보 준비됐어요. 털실…….’
잘 보관해 둔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털실을 감습니다. 머리, 몸통, 팔다리가 내 손에서 유연하게 움직입니다. 전에 만들어 두었던 뚱뚱이 헝겊 곰 인형과 함께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에코 백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어느 곳을 먼저 찾아가야 할까요. 아무래도 길 건너에 있는 공원 팥배나무입니다. 개미가 나무줄기를 타고 구멍을 드나듭니다. 다음으로는 참나무입니다. 청설모가 나무 사이를 건너뛰고 인기척을 느끼면 재빨리 숨바꼭질합니다.
미리부터 내년의 그림책에 빠졌습니다. 현관을 나서며 전신거울을 보니 얼굴에 활짝 웃는 곰이 재촉합니다.
‘서둘러요, 서둘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