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좋은 날씨 20230717
새벽에 잠이 깨자, 창밖의 공간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침대에서 몸을 몇 차례 뒤척이고 거실로 나와 밖을 내다봅니다. 우산을 쓰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빠른 걸음을 걷는 사람이 보입니다.
‘비가 오나 봐.’
다시 주위를 둘러봅니다. 이른 새벽이라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우산을 쓰지 않았습니다. 걸음걸이를 미루어 짐작할 때 산책 하는 느낌이 듭니다. 비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흐린 날씨는 분명하지만, 고층에서 내다보는 바깥은 아래층 창 너머로 보이는 모습과 다릅니다. 비가 내린다, 내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인식하기가 불분명합니다.
‘나가, 말아’
잠시 주춤거리다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몸이 찌뿌듯한 게 집에 머물러 있기에는 마음마저 답답해질 것만 같습니다. 장마철이라 우중충하고 습하기는 하지만 나가서 바람이라도 쏘이면 마음이 가벼워지겠다고 생각됩니다.
비가 오는 듯 오지 않는 듯 그냥 그런 새벽입니다. 며칠 사이에 많은 비가 쉴 새 없이 퍼부었으니, 이제는 그만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햇볕이 ‘쨍’하고 나타나 습한 공기를 몰아가면 좋겠습니다. 어제저녁에는 세탁했습니다. 빨래를 해봐야 잘 마르지 않겠다는 생각에 햇빛이 나면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더는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예상대로입니다. 건조대의 옷가지는 눅눅한 상태입니다. 전 같으면 하룻밤 사이에 바싹 말랐을 상황입니다.
“웬 날씨가 이 모양이야.”
나보다 먼저 나와 지붕이 있는 벤치에 앉아 있는 내 또래의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내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인지는 가릴 수 없지만 날씨 투정임은 틀림없습니다.
아이들 놀이터에 갔습니다. 바닥이 젖어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공을 찰까 말까 망설여집니다. 그저께는 공을 찼는데 표면이 더러워졌습니다. 물때라고 해야 할까, 먼지 때라고 해야 할까. 깔끔한 외양이 얼룩덜룩 칙칙하게 변했습니다.
“웬 날씨가 이 모양이야.”
그러고 보니 내가 먼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좋은 날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햇볕이 쨍쨍한 날, 구름이 낀 날, 바람이 부는 날, 비가 오는 날, 눈이 내리는 날, 몹시 더운 날, 매섭게 추운 날…….’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날이란 해가 있고 맑은 하늘을 연상하기가 쉽습니다. 어렸을 때 하늘은 무조건 파랗다고 생각했습니다. 풍경화를 그릴 때마다 하늘을 늘 파란색으로 칠했습니다. 천자문을 보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고 했습니다. 별도 달도 없는 한밤중의 하늘을 떠올렸는지 모릅니다. 내가 하늘의 색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어른이 되어서입니다. 내 생각을 일깨워 준 것은 하늘을 보는 내 눈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표현이나 책의 힘도 있습니다. 하늘의 색은 고정된 게 아닙니다. 나무 또한 그렇습니다. 계절에 따라 색의 변화가 있습니다. 같은 계절이라고 해도 짙고 옅음의 차이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의 색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합니다.
요즘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산을 파는 사람, 장화, 비옷을 파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 오는 날을 좋은 날씨라고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짜증을 낼지도 모릅니다.
“미친 사람 다 보겠네, 전국적으로 비 피해가 말도 못 하는데……’
가뭄이 심할 때는 해가 쨍쨍하고 하늘이 맑다고 좋은 날씨라 말할 사람은 드뭅니다. 하지만 메마르고 무더운 날을 좋은 날씨라고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물놀이나 시원한 곳을 찾아 피서를 즐기고 싶은 사람입니다.
매섭게 추운 날을 탓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날씨가 고약해서야 원.”
“이 사람아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는 거야.”
농사를 짓는 사람의 말입니다. 병충해가 줄어들어 풍년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결국 좋은 날씨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기후 중의 하나입니다.
날이 맑아야 할 때 맑고 비가 내려야 할 때 비가 와야 합니다. 해, 구름, 비, 바람, 눈이 사계절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사람과 자연이 필요로 할 때 알맞게 변화하는 날을 좋은 날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좋은 날씨는 무엇이겠습니까. 햇볕이 ‘쨍’하고 나서 습기를 하늘 어딘가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좋은 날씨는 햇살 가득한 날입니다. 막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눈이 부십니다. 모자, 양산, 색안경을 떠올립니다.
며칠 후에는 구름이 옅게 드리운 하늘을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좋은 하늘,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도 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