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아이의 얼굴에서 20230716
늦잠을 잤습니다. 간밤에는 늦게까지 불을 밝혔습니다. 생각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매일 하는 새벽 운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루한 장마가 나의 습관을 게으르게 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아침은 다행히도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유리창에는 빗방울이 올챙이 무리처럼 군집을 이루고 있기는 해도 밖은 오랜만에 먼 곳까지 보입니다. 구름이 드리우기는 했어도 반갑게 느껴집니다. 집에만 갇혀있었더니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비가 주춤하는 사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몇 번 공을 차다 보니 한 번의 헛발질로 공이 연못에 빠졌습니다. 내가 잡을 사이도 없이 굴러간 공은 수면 위에 배처럼 떠 있습니다.
‘빠진 김에 목욕을 제대로 하렴.’
얕고 작은 연못이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달아나봤자 내 눈 안에 있습니다. 내 가까이에서 점차 멀어집니다. 손을 뻗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닙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내 경험으로 보아 기다리다 보면 제멋대로 떠다니다 가장자리로 다가오게 되어있습니다. 예상이 빗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삼사 분이 지나자 드디어 각이 진 모서리로 다가와 멈췄습니다. 쪼그려 앉아 공을 집으려 했지만, 손이 닿지 않습니다. 연못의 턱이 낮으면 좋으련만 내 손이 한 뼘만큼 더 길어야 할 위치입니다.
무릎을 꿇고 공을 잡으려 했지만, 손이 닿는 순간 미끄러져 반대편으로 떠밀려 갑니다. 꼬마 아이가 잠자리채를 손에 쥐고 내 뒤로 달려갑니다. 제 키만큼 턱진 지지대에 몸을 붙이고 잠자리채를 아래로 내렸습니다.
“안 돼, 위험해.”
순간 손을 내저었습니다. 내 모습이 안 돼 보였을까요. 공을 건져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게 분명합니다. 한쪽 발을 지지대 위로 올립니다. 매미채가 공에 닿기에는 아주 부족합니다.
“떨어지면 큰일 나요.”
내 말에 아이의 아버지도 손을 내저었습니다.
가만히 기다리면 됩니다. 바람이 불고 있으니, 물결을 따라 움직이다가 어느 가장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내 생각대로 공은 ‘동 동동’ 떠돕니다. 느긋하게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드디어 공이 내 앞으로 다가옵니다. 무릎을 꿇고 건져낼 생각입니다. 아이도 매미채를 두 손으로 들고 기다립니다. 내가 건지는 게 좋을까, 아이가 건지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좋을까.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이 선뜻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 아빠의 긴 손이 내 생각을 벗어나 공을 건져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아이에게 양보하는 게 어떠했을까 합니다. 나름대로 나를 돕고 싶었던 게 분명합니다. 기회를 한 번 주었더라면 매미나 잠자리를 잡는 것만큼이나 공을 건지는 즐거움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도왔다는 뿌듯한 마음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공을 건네받으며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사라지자, 아이에게 그 말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비록 공을 건지지는 못했지만, 남을 도우려는 마음 자체를 높이 사고 싶습니다. 돕겠다는 어린 마음이 안전 보호막을 염두에 두지 않고 두 발을 턱 위로 올리려고 했습니다. 지지대 밖은 절벽입니다.
이번 여름철 집중호우에 많은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고 재산 피해도 컸습니다. 앞으로도 급작스러운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질 거라고 주의를 당부합니다. 평소 강수량의 몇 배가 한꺼번에 쏟아져 산사태, 도로 침수, 하천의 범람은 물론 저수지의 물이 넘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용감한 국민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안전을 뒤로한 채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거나 돕기 위해 사건 현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안전지대로 대피하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홍수뿐만 아닙니다. 자연재해를 비롯한 여러 가지로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잊은 채 상대방을 돕기 위해 현장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재나 자동차 사고 등이 있습니다. 종종 뉴스를 통해 이야기를 듣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있기는 해도 남을 생각하는 선의의 사람이 더 많기에 사회는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도운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뭐, 똑같은 일이 발생해도 같은 행동을 하지 않겠어요.”
아침에 공이 물에 빠진 작은 예이기는 해도 남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는 건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우리 주위를 맴도는 뉴스는 선행보다는 악행의 일이 더 많이 알려집니다. 악행은 밖으로 들춰내지만, 선행은 뒤로 숨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의 몸짓에서 나를 되돌아봅니다. 나는 그동안 남을 위해 얼마나 선행을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