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화형식이라니 20230721
‘화형식’이라는 말이 선뜻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잊고 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전에 책을 읽을 때 가끔 접하는 일이기는 해도 일상에서의 생각은 머릿속을 떠난 지 꽤 되었습니다.
아침에 신문 기사를 읽었는데 어느 유명 기업체에서 화형식을 했다는군요. 사람이나 동물을 화형 한 것도 아니고 자기 회사의 의류랍니다. 전에 헌 옷가지를 폐기물로 소각로에서 태운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새 옷이라니 의구심이 듭니다.
중세 시대에 죄 없는 여인을 마녀로 둔갑시켜 불태워 죽인 것처럼 말입니다. 팔리지 않은 멀쩡한 새 옷을 상표가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소각했습니다. 몇 년 지난 옷이지만 재고 관리에 따른 운영비를 아끼고 회계상 손실 처리되어 세금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목적은 가격을 자신들의 마음에 맞도록 유지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패션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1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는 해상이나 항공 교통에서 차지하는 온실가스보다도 많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세계의 곡물생산 국가들은 그들이 원하는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곡물을 폐기하기도 합니다. 이상한 현상입니다. 인구에 비해 곡물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이와 반대입니다. 풍년이 들어도 세계 곳곳의 가난한 사람들은 기아에 굶주려 죽는 일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식량이 모자라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인구의 급속한 증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거짓임이 밝혀졌습니다. 교통에 따른 유통구조가 잘 갖추고 제때 원조하면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화형식’의 합법화입니다. 특별한 경우입니다. 나라에서는 죽은 사람이나 동물에 대해 인정합니다. 옛날부터 불교계에서 있던 일입니다. 그 예가 화장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국토가 좁다 보니 매장으로는 한계가 있어 땅을 보존하고 활용한다는 면에서 시행되었습니다. 나는 가끔 말합니다. 죽은 자가 산자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고, 처음에는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반대로 화장에 의한 장례문화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이 외에도 농담 아닌 농담을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지은 죄가 크다 보니, 옛날 사람들에 비해 세 가지 고행을 겪어야 저승으로 갈 수 있습니다. 첫째는 노쇠하여 죽을 때가 되면 요양원으로 가고, 죽으면 얼리는 차가움을 맛보고, 불에 태워지는 극한의 뜨거움도 감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이니 어쩔 수 없기는 해도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흐르다 보면 저승으로 가는 다른 대안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저번 일요일에는 허리띠를 살까 하고 쇼핑센터를 찾았습니다. 다양한 옷가지들이 매장을 채웠습니다.
‘이 많은 옷을 다 어떻게 하나.’
이곳의 옷 만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장 사이를 지나는 동안, 이 옷 저 옷을 기웃거립니다. 집에 옷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괜한 호기심이고 욕심입니다.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입기에 싫증이 났다는 이유로 지갑은 생각하지 못하고 기웃거립니다.
‘사, 안 사.’
잠시 망설이는 사이 점원이 눈치를 챘는지 다가옵니다. 슬며시 외면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내 매장이 아니라서일까요. 보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옆에 누가 있다는 게 불편합니다.
어제는 장례식장에 가야 했습니다. 장을 열고 옷가지를 고릅니다. 공간을 꽉 채웠음에도 선 듯 마음에 드는 것이 없습니다.
‘일요일 날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샀어야 했는데.’
직장을 그만둔 지 오래되었습니다. 정장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저 편안한 옷만 생각하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구닥다리만 남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저것 만지다 하나를 들고 거울 앞에 섰습니다. 고개를 갸웃하다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뭐가 어때서.’
모습을 봅니다. 얼굴이 더 낡았다는 생각에 씩 웃었습니다. 문득 표정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자면서도 거울 앞에 서면 마음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과의 비교입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남의 의식하는 버릇이 살아납니다. 만족하며 살기로 다짐했는데도 말입니다. 생각같이 쉬운 일이 아님은 알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문득 하면서도 정작 내 허리띠가 낡은 것을 잊었습니다. 어색해 보입니다. 실밥이 뜯어지고 띠 자체가 허옇게 되었습니다. 슬그머니 바지 속의 웃옷을 밖으로 내렸습니다. 아무래도 허리띠 하나쯤은 바꿔야겠습니다.
‘화형식’
세계는 기후변화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가뭄, 홍수, 해일, 폭설 등이 증가합니다. 필요 이상의 생산량이 온실가스를 증가시킵니다. 이는 지구의 온난화로 이어집니다. 더욱 풍요롭고 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이 빗어낸 결과입니다.
지구를 지키는 길은 덜 생산하고, 덜 먹고, 덜 쓰고, 조금은 불편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있는 것에 만족해야겠다고 다시 다짐합니다. 절약의 지혜입니다. 풍요로 인한 불필요한 화형식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