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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140. 콩국수 20230727

by 지금은

“우유가 필요해요.”

잠시 해가 반짝하는 사이에 운동을 끝내고 아내와 마트를 들렸습니다. 이것저것 둘러보던 아내는 재빨리 내 곁을 지나칩니다. 잠시 잠깐이지만 냉기가 올라오는 진열대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병에 든 콩국이 손에 잡힐 듯 손아래 있습니다. 순한 아이처럼 아내를 따라갑니다. 우유를 집어 들었습니다. 아들이 퇴근 후 물처럼 마시는 음료입니다.

아내는 내가 왜 냉기가 올라오는 진열대 앞에서 정지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짐작은 했지만 저녁을 먹으며 말했습니다.

“알고 있으면서 왜 사지 않았어.”

“영양가도 없고, 맛도 없는 걸 뭐.”

기상청에서 장마의 끝을 알렸습니다. 지루한 장마, 폭포수를 연상시키는 폭우는 기간 내내 집 안을 온통 습기로 채웠습니다. 하지만 말없이 꾹 참을 수 있었던 것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이는 수해 현장 때문입니다. 뭐라고 설명하기보다는 말수가 적은 나에게는 처참하다는 말 한마디로 표현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장마 기간에는 온 집안이 눅눅해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잠자리가 불편합니다. 침대를 싫어하는 나는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자는데 축축한 느낌이 잠드는데 방해됩니다.

“물먹는 하마라도 사서 놓으면 좋지 않을까.”

“그래요.”

대답을 잘했지만,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합니다. 잠이 쉽게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콩국수가 머릿속을 채웁니다.

‘더운 날에는 콩국수가 제일인데.’

아내는 며칠 전부터 입맛이 없다고 말합니다. 콩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할까 하다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들에게도 같은 말을 했나 봅니다.

“삼계탕 어때요.”

“많아서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입니다. 몸보신을 위해서 가끔 먹어주어야 한다던 그의 말이 어색하게 다가옵니다. 양이 많다며 몇 번 남긴 때가 있습니다. 소식을 하는 아내는 남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염려가 되는 모양입니다.

바로 어제입니다. 또다시 입맛이 없다고 말합니다.

“저녁에 운동을 겸해서 밖에 나갔다가 당신 좋아하는 추어탕 먹는 게 어때.”

걷기 운동은 했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후텁지근해서 목욕을 빨리하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입맛은 없다면서 그냥 해본 소리일까.

나는 입맛이 없지 않지만, 콩국수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아내는 콩국수가 아니라, 라면 종류를 제외하면 국수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양가가 뭐 있겠냐는 이유입니다. 내가 국수를 좋아하는지는 언제부터인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는 밀가루 음식 자체를 싫어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밀가루뿐만 아니라 음식 자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어려서 무엇을 먹고살았는지 궁금합니다. 배탈을 달고 살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는 사람은 식사 때 나에게 ‘더 먹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음식을 가리지 않습니다. 소화를 잘 시키는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괴롭히던 배탈이 점차 줄어들더니 어느새 벗어났습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꾸준한 운동의 결과라 여겨집니다.

“냉콩국수는 엄동설한에 먹어야 제맛이지.”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이 납니다. 갓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제맛이랍니다.

나는 냉콩국수를 겨울에 먹어본 경험은 없습니다. 대신 메밀냉면을 먹어보았습니다. 이북이 고향이라는 선배님이 동료들을 허름한 식당으로 초대했습니다. 냉면 전문점입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펄펄 끓는 방 안에 앉아 먹는 냉면의 맛.’

다른 그림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북극 지방에 가서 먹는 곰탕의 맛.

“왜요. 잠자리가 편하지 않아요?”

아내도 잠들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나는 슬그머니 거실로 나왔습니다. 셔츠 앞자락을 잡아 부채질합니다. 장마 끝을 알리자, 더위가 재빨리 몸에 달라붙었나 봅니다. 그러고 저러고 오늘은 왜 콩국수가 더위처럼 마음에 착 붙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새 눈 쌓인 겨울 풍경을 그립니다. 그 식당 없어진 지 오래인데 찾아가야 할까요. 혹시 잘하면 겨울 콩국수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여보, 입맛 떨어졌다는데 찾아야지 않겠어요. 점심때는 무조건 나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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