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지난 생각 20230803
“폐교된 거야.”
내부 출입 금지의 문구가 교문 중앙을 가렸습니다. 가까이 다가서서 안을 들여다봅니다. 운동장에는 잡풀이 제멋대로 우거져 있습니다. 건물의 내부를 보고 싶었지만, 바깥의 벽면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큰 나무에 숨어 수줍게 나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맞지요, 제가 말했잖아요.”
아들이 여름철 휴가를 얻었습니다. 여러 곳을 찾아보다가 내가 근무했던 학교를 찾아볼 겸, 섬을 둘러보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굳이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섬을 떠난 후 이십여 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한 번 떠난 곳은 다시 돌아보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학교로 옮겨 다녔지만, 방문한 학교는 딱 한 곳입니다. 교사로 첫발을 내디딘 초임지입니다. 이마저도 스스로 찾아간 게 아니라 제자들의 성화에 찾아갔습니다. 생각해 보니 학생들에게 살갑지 못했는데 그들은 나를 잊지 못했나 봅니다. 제자들이 곧 스무 살이 넘었다고 생각할 무렵입니다. 학교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초대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자, 반장 아이가 승용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습니다.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여 동행했습니다. 동창생들을 비롯하여 동네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내 모습이 변한 것처럼 그들도 많이 변했습니다. 코흘리개의 아이들이 사십을 넘어선 어엿한 중년입니다.
이야기 중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의 동향에 대해 제자들이 알려주었습니다. 함께 근무할 때는 식구나 다름없이 지냈습니다. 시골의 구석진 학교로 직원은 모두 여덟 명입니다. 내가 떠난 다음 그분들의 소식은 감감무소식입니다. 잠시 화살이 내게 쏠렸습니다.
“선생님, 아무리 바쁘셔도 그렇지.”
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찾아 나섰답니다. 교육청, 내가 전에 살던 곳 등. 제자들만큼이나 함께 근무했던 분들도 궁금했나 봅니다. 행사 때 만나면 내 안부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몇 분은 이미 퇴직했고, 한 분은 서울에, 또 다른 분은 파주로 갔답니다. 서울로 간 여선생님, 파주로 간 학교 관리인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올봄에 평생학습관 프로그램 중 ‘그림책 이야기’를 수강했습니다. 친구의 청을 들어 함께 고향을 찾아가는 곰의 이야기책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때 친구 중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나는 고향보다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반 친구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가난한 시절 차비라도 아껴보려고 먼 거리지만 함께 걸어서 통학했습니다. 일 년 후 그는 이사했고 가장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학교마저 그만두었습니다. 내 졸업식에 찾아온 친구, 그 후 소식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학생의 애 띤 얼굴,
내가 이 친구를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 두 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선생님이 먼저 소식을 전했어야지요. 이제나저제나 하고 함께 했던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궁금하지만 소식이 없다는 말에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같아 친구처럼 지냈던 사람, 퇴근 후 별일이 없을 때는 가끔 교실에서 밤을 새워 탁구 했습니다. 마음이 포근한 데다 나이가 두 살 더 많아 누나처럼 생각했던 사람, 아이들 지도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이지만 건물의 모습은 처음입니다. 내가 섬에 갔을 때는 이미 분교입니다. 일곱 개의 교실에 학생은 일곱 명입니다. 교사 두 명이 복식 수업을 했습니다. 두 개의 교실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습니다. 낡은 건물, 우거진 나무들, 몇몇 달을 단장에 힘썼습니다. 나무를 솎아내고 건물을 단장했습니다. 교육청에 물품을 신청하여 검게 변한 건물을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근무하는 중 나름대로 공을 들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찾아오고 몇 군데서 아이들을 위한 도서를 기증받아 빈 교실을 도서실로 꾸몄습니다.
‘아름다운 학교’
하지만 내가 떠나오고 몇 해 후 지금의 새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이유는 건물이 오래되어 붕괴의 위험이 있답니다. 홈페이지를 확인하니 옛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 아담하고 예쁜 집이 들어섰습니다. 새로 지어졌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폐교될 줄은 몰랐습니다. 농어촌 지역의 어떤 학교처럼 입학생이 없답니다.
낯섭니다. 오랜만에 찾아갔지만 섬 전체가 개발로 옛 정취를 잃었습니다. 여기저기 파헤쳐 누더기의 모습입니다.
그때 그 사람, 그때 그 학교는 온데간데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성인이 되었을 테고, 다정하게 지냈던 관리인은 퇴임했고, 남은 건 마음뿐입니다. 섬을 떠나며 전해주지 못한 사진을 펼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