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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146. 호사 20230802

by 지금은

“이 정도면 호사하는 거야.”

셔틀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지났습니다. 막 차에 오른 사람이 옆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며 하는 말입니다.

여름입니다. 장마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불볕더위가 나라 전체를 달굽니다. 올여름은 우리나라뿐만 아닙니다. 여름이 해마다 더운 것은 분명하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유럽의 대부분 나라와 아시아 미국도 더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웠으면 야생 곰이 주택의 수영장에 뛰어들었겠습니까. 사람들을 본체만체 목욕하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내용이 사진가 함께 신문 기사에 실렸습니다. 유럽은 최고 기온이 오십 도에 육박하기도 했답니다.

오늘의 기사입니다. 이란정부는 살인적인 더위로 이틀 동안 임시 휴일로 정했습니다. 페르시아 국제공항의 체감온도가 67도를 기록하며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에 근접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서남부 지역은 더위로 인해 1000여 명이 병원신세를 지고 물 부족으로 항의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지성 호우가 평년의 강수량에 비해 네 배나 한꺼번에 쏟아져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더위도 평년에 비해 일찍 찾아왔고 이삼 도나 더 높습니다. 집을 나오면 집안의 온도계를 보니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삼십이 도를 가리킵니다. 집에 있으면 짜증만 날 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도서관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도서관은 복지관과 한 건물입니다. 앞에서 말한 사람처럼 오늘은 호사스럽게 지내야겠습니다.

“집 앞에 있으면 태워다 주지, 저녁에는 데려다 주지, 낮에는 시원하게 해 주지.”

“맞아요, 이보다 더 좋은 게 있겠어요.”

뒷좌석에 앉아 맞장구를 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은 세월입니다. 경제발전은 노인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갑니다. 그동안 어려운 나라 사정에 죽어라 고생만 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어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이제는 십 대 경제 대국이라고 우리는 물론 세계의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이에 따라 복지도 좋아졌습니다.

나는 노인이 되어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지하철을 탈 때 무임승차입니다. 고궁을 비롯하여 다중 시설을 이용할 때 경로 혜택이 있습니다. 배움에도 혜택이 있습니다. 복지관 이용은 무료이고 다른 곳도 젊은이들보다 이용료를 낮춰줍니다. 건강하고, 배울 생각만 있다면 얼마든지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고 배움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차에 있는 몇 사람은 학습 강좌가 끝났는데도 건강을 위해 매일 복지관에 갑니다. 동호회를 결성하여 배운 운동을 연습하고 취미 생활을 합니다.

“요즘은 포켓볼과 담을 쌓으셨어요.”

몇 년 전에 함께 기초를 배운 분이 인사를 합니다. 그녀는 함께 어울리는 재미가 있다며 종종 함께 운동할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됐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시설을 이용할 수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멀어졌습니다. 다시 시작하려니 선 듯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나는 운동보다는 독서, 글쓰기, 그림, 음악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그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뭅니다. 밤이라고 별수 있습니까. 늦게까지도 하고자 했던 것을 끝맺지 못해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책상머리를 지키기도 합니다.

나는 경제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위에 시선을 두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합니다. 다만 세월이 지날수록 내 건강이 예전만 못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아픈 곳이 하나둘 늘어나고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약의 가짓수도 늘어납니다. 한 알이 두 알이 되고 이제는 서너 알이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건강은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젊은이에게 맞는 건강, 육십 대의 건강, 칠십 대의 건강, 백 세에 맞는 건강을 말합니다. 아직 구십이나 백 세를 맞이하지 못했으니 그 정도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질병을 잘 다스리며 함께 가라는 말로 여깁니다.

나는 가끔 텔레비전에서 ‘황금연못’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합니다. 주로 칠팔십 대의 노년들이 등장합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생을 즐깁니다. 프로그램에 참석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 건강 유지를 잘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지관에 매일 나와 배움을 이어간다는 사람도 괜찮은 건강의 소유자가 아닐까 합니다.

‘이 정도면 호사하는 거야.’

그의 말에 버스 안에서 잠시 음미하던 시집을 덮고 그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그의 표정에서 만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보,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고 오후에 셔틀버스 타고 곧장 집으로 와요.”

“도서관 문 닫을 시간까지 있어야지. 시원한데.”

아내는 집으로 오는 것을 염려합니다. 차편이 좋지 않기도 하지만 기온이 높다 보니 염려가 되나 봅니다. 나는 추위나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웬만한 거리면 걷는 습관이 있습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간은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저께는 그림 붓을 사려고 화구 점까지 걸었습니다. 예전에 보아둔 곳이라 근처까지 찾아갔지만, 입구를 찾지 못해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집에 와서 위치를 찾아보니 바로 옆에 두고 헤맸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만, 오늘은 돌아가는 길에 들려야겠습니다.

호사란 게 별거겠습니까. 건강을 유지하고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로 생각합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소소한 것일망정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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