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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148. 여름의 필수품 20230803

by 지금은

“여름은 노출의 계절입니다.”

흔히 듣는 말이었지만 점차 잊혀 갈 날이 다가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점심 무렵 창밖을 내다보니 젊은 사람 하나가 우산을 쓰고 갑니다.

‘오늘같이 더운 날에 웬 우산이야.’

눈여겨보았더니 우산이 아니라 양산입니다.

정부에서는 장마가 끝 무렵 연일 폭염경보를 내리며 주의점을 알립니다. 저녁 뉴스를 보니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를 찾아온 사람이 양산을 쓰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는 양산과 냉토시가 폭염을 이기는 필수품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선글라스도 있어야겠습니다. 물병도 있어야 합니다.

장마가 끝나자, 양산이 예년에 비해 두 배나 팔렸답니다. 눈여겨 볼일은 남성 중 삼사십 대에서 사용량이 늘고 있습니다. 체감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온열질환 위험성이 높아진 가운데, 중년의 아이템으로만 여겨지던 양산이나 냉토시 등 ‘폭염 대비 품목’에 대한 관심이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올라가고 있다.

더위가 심한 대구시는 몇 년 전부터 ‘양산 쓰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구시는 각 구 군 민원실, 동 행정복지센터 등에 양산 수천, 수만 개를 배부해 시민들을 상대로 양산 쓰기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습니다. 양산을 쓸 경우 따가운 햇볕을 피하고 온도를 7도 정도 낮출 수 있으며 체감온도를 10도 정도 내리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자외선을 차단해 피부질환이나 피부암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호응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한 누리꾼이 말했습니다. 양산 쓰고 나갔는데도 더워서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내리자마자 불타오르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누리꾼들의 이야기입니다.

“다들 양산 써서 정수리를 지키자, 양산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마스크 필수 시대에서 양산 필수 시대가 된듯합니다. 올해 들어 양산을 쓰고 다니는 남성들이 갑자기 늘어났다며 남성들도 거부감 없이 양산을 쓰고 다닐 수 있는 시대가 온 게 아니냐고 합니다. 아울러 가벼운 것을 사야 팔에 무리가 없어 오래 들 수 있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양산뿐 아니라 다양한 ‘폭염 대비한 물품’들이 인기입니다. 한 사람은 밀짚모자를 추천했습니다. 그는 양산을 쓰면 팔 아파서 밀짚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합니다. 청년들의 ‘냉토시’ 사용도 늘었습니다. 토시를 차면 팔 안쪽에 땀이 차지 않아 좋다고 합니다. 패션 포기하고 피부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고 합니다. 공연이나 운동 경기를 관람할 때 등, 야외활동에서는 냉토시가 필수입니다. 그 예가 자전거 동호인들입니다.

목에 거는 선풍기도 인기 있답니다. 남성들의 반바지 출근도 늘어납니다. 그간 복장 자율화를 시행하는 회사들에서도 남성의 반바지 착용은 자유롭지 않았지만, 폭염에 이 같은 분위기도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반바지의 판매량도 증가추세입니다.

어제는 아들이 생각지 않은 말을 했습니다.

“혹시 우리 집에 토시 있어요?”

“네 방의 책상 밑 상자 속에 있지 않아.”

햇볕에 얼굴이 그을렸다는 말에 팔을 살펴보더니만 생각이 났나 봅니다.

우리 식구는 이미 양산을 사용했습니다. 아들이 여름휴가를 얻어 며칠 전에 안면도를 일주했습니다. 안면암이 기억에 남는다기에 첫 번째로 들렸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오전 열 시가 지날 무렵인데 어느새 폭염이 시작되었습니다.

‘모세의 기적.’

바닷물이 갈라져 육지에서 섬까지 갈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삼십여 년 전에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교통 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먹고 갔는데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물때를 맞추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직장에 출근해야 하니 섬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가져오기를 잘했다.”

아내가 양산과 색깔이 있는 우산을 하나씩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섬에 들렀다 육지에 이르렀을 때는 옷이 땀에 젖었습니다. 팔이 붉어지고 얼굴도 홍조를 띠었습니다. 이왕이면 토시도, 우산도 큰 것으로, 선글라스도, 물도 준비했더라면 하고 아들의 생각에 덧붙였습니다.

기후학자들은 지구의 온난화로 매년 기온이 상승할 거로 예측합니다. 그 증거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해수면이 높아지고 극지방의 빙하가 줄어듭니다. 만년설이 녹아내립니다.

여름을 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생각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폭염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을 논의하고 시행하여야 합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 지도자를 비롯하여 학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에너지의 양을 줄여야 합니다. 실천이 문제입니다. 각 나라의 이해관계로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실천은 뒷전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지구의 위험을 알리지만 강대국들은 당장의 이익만을 위해 달립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에너지의 증가가 지구를 용광로로 만들어 갑니다. 편리만을 추구하다 보면 인간의 고통은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실험실에서 데워지는 비커 속의 개구리를 닮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여름이 노출의 계절이란 말이 과거의 언어가 되지 않을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자외선 차단, 나들이할 때마다 온몸을 감싸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한여름의 필수품인 휴대용 선글라스, 양산, 토시, 물, 선풍기,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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