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삶 20230805
‘살아진다.’는 말과 ‘살아간다.’ 나는 가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살아진다는 의미는 수동형이고 살아간다는 능동형이 아닐까 합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잘되지 않을 때, 하루를 무의미하게 생각 없이 흘려버렸을 때……. 젊었을 때는 지구를 홀로 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고뇌에 빠진 때가 있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제자리에 고정된 느낌입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니었는데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의 하나라 여겨집니다.
개인마다 지나온 과정이 다르고 삶의 무게도 달랐으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종착점에 이르고 보면 다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는 것은 없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과정만큼은 있습니다. 못난 사람도 잘난 사람도 결승점에 이르러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결승점이 있습니다. 일찍 포기하거나 끝까지 이어가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은 나 혼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이런 짧은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서 없어지기는 원하노라.’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나처럼 고뇌에 싸이는 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 하는 안고 삽니다. 그 돌덩이를 치우기 위해 평생을 씨름하며 지냅니다.
책 속의 한 사람도 나처럼 이 짧은 글귀를 발견하는 순간 느끼는 게 있었습니다. 늘 책상 위 연필통에 꽂혀있는 연필이 생각났습니다. 외국에 나갔다가 그냥 예뻐서 기념품으로 사 왔습니다. 연필의 용도는 써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능을 잊고 장식품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은 순간 자신이 연필만큼이나 장식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 일이 없는 존재라고 여겼는지 모릅니다.
‘뭐야, 녹슬고 있다는 거야.’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녹슬어 없어지기가 두려웠습니다. 이대로 버려질까 싫었습니다. 몽당연필이라도 되어야겠습니다. 이처럼 닳고 닳아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숨을 쉬고 있는 한 뭐라도 해야 한다.’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안개가 걷히고 밝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부처만큼이나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물건을 찾았습니다. 역시 연필입니다. 몇 년 전 인사동에 갔었는데 마침 길 건너 송월동 공원이 단장을 마치고 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골목을 따라 벼룩시장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소품에 관심이 있는 나는 재미 삼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한 곳에 이르러 작은 물품들을 구경하다가 한 점에 눈이 갔습니다. 상대가 눈치를 채고 집어 들었습니다.
“퀴즈 문제를 풀어보시겠어요? 맞추면 그냥 드릴게요.”
재미 삼아서 했는데 맞췄습니다.
연필을 받았습니다. 필기구라고 하기보다는 장식품이라고 해야 어울립니다. 동그란 연필이 아니라 연필심이 넓적하고 그에 비례해서 나무도 넓습니다.
“연필이 맞아요?”
“예.”
‘너는 장식품에 머물러서는 안 돼.’
연필이 연필깎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옛날의 실력을 발휘해서 칼로 깎았습니다. 글씨를 써보려니 생각 같지 않습니다. 잡는 자체가 어색하고 획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네 삶이란 뭔데, 영원한 장식품.’
연필이 고갯짓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연필 생각도 내 생각도 그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긴 선을 그었습니다. 짧은 선을 그었습니다.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생각지 않은 선이 나타났습니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가는 선, 굵은 선이 그어집니다.
평생학습관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각종 학습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스마트폰 ‘동영상 편집’과 ‘펜 소묘’ 그리고 ‘서양의 고전음악 감상’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늙어간다고 마음마저 녹슬어야 하겠습니까. 닳아 없어지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내 습관적인 글쓰기에 색을 입혀야겠습니다.
연필을 들여다봅니다.
‘몽당연필이 되기까지 각오가 되어 있겠지? 우리 함께 살아가는 거야. 쇠 방망이가 바늘이 되도록 그렇게 닳아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