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다리 밑이 생각난다. 20230810
‘이 더위쯤이야.’
용기를 냈습니다. 웬만하면 참을성 있는 삶을 살아왔기에 셔틀버스를 외면하고 걷기로 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기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문이 소리 없이 열립니다.
“어서 타세요.”
“걸어갈까 하는데요.”
“아니, 이 더위에! 큰일 나요.”
걱정을 해주는 것을 뒤로하고 공원으로 들어섰습니다. 공원, 공원, 공원, 공원. 이렇게 공원을 네 번 거치면 집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무언가 배우려고 복지관에 갈 때는 집 앞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지만 올 때는 되도록 걸어옵니다. 버스를 이용하면 편한 것은 알지만 한적한 공원을 걷는 재미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덤으로 건강을 챙길 수도 있습니다.
어제 복지관에서 옆에 앉은 사람이 말했습니다.
“까딱 잘못했으면 정수리가 익을 뻔했어요. 햇볕이 어찌나 강한지 시검댕이가 되어버릴까 봐 겁이 났어요.”
“그러게 말이어요. 보통 더위여야 말이지. 이럴 때는 다리 밑이 최고인데, 시원하기는 한데 에어컨 바람이 뭐 좋겠어.”
셔틀버스의 기사 말을 들을 걸 그랬습니다. 백여 미터도 못 갔는데 정수리는 물론 팔도 따갑습니다. 폭우가 나라를 흔들더니 이제는 더위가 뒤를 이었습니다. 지구가 들끓고 있나 봅니다. 새만금 국제 잼버리 대회가 더위로 인해 차질을 빚었습니다. 그늘이 없는 벌판의 뙤약볕에서는 행사가 무리인가 봅니다. 한 나라 두 나라 회원이 짐을 싸 들고 도시로 탈출하자 어쩔 수 없이 중도에 장소와 일정을 변경했습니다.
‘걸어보는 거지.’
옛날에도 견뎠는데 지금이라고 안 되겠느냐는 생각에 가는 길을 계속했습니다. 덥기는 덥네요. 더운 게 아니라 뜨겁습니다. 뜨거움에 따가움까지 곁들입니다. 변변찮은 나무 그늘이 나를 감싸지 못합니다. 결국 정자로 쫓겨 들어갔습니다. 넓은 공간이지만 숨이 턱 막힙니다. 더운 열기가 나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했음이 분명합니다.
‘이럴 때는 다리 밑이 최고인데.’
물이 있고 그늘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미역을 감으며 붕어, 피라미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한국식 잼버리 야영입니다.
봄입니다. 집 앞에 있는 공원을 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원을 채웠습니다. 호수를 따라 배가 한가로이 떠 있습니다. 어느새 다리 밑 평상에 사람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한쪽 자리에 눈이 갑니다. 음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대낮인데도 소주와 새우깡이 보입니다.
술을 보니 고향의 다리 밑이 생각납니다.
‘막걸리와 오이’ 때로는 ‘소주와 오징어’
이럴 때는 미역을 감다가 오징어 다리 하나 얻어먹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고기가 보이니? 다슬기도 좋지.”
오징어 다리를 하나 더 손에 들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압니다. 머리를 끄덕였지만, 물장구에 곧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이럴 때는 등목이 최고인데, 햇볕을 피하기는 했는데 열기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목덜미를 타고 땀이 쪼르르 미끄럼을 탑니다. 물기가 손에 넉넉히 묻어납니다. 손을 허공을 향해 홱 뿌렸습니다. 물방울이 날아갑니다.
아무래도 이런 날은 다리 밑을 찾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리 밑은 고향입니다. 아기일 때입니다. 말썽을 부렸나 봅니다. 고모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 너 엄마 아들 아니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고모와 같은 말을 한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셔틀버스 안에서 한 사람이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해서 얼마나 울었다고.”
고모의 말에 한 때는 다리 밑이 그렇게 싫었는데, 지나고 보니 여름철에는 다리 밑이 내 놀이터였습니다. 나뿐이겠습니까. 온 동네 사람들의 놀이터고 쉼터였습니다.
이제는 예전의 가마솥더위가 아닙니다. 용광로 더위, 아니 체험은 하지 못했지만, 지옥 불 더위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폭우에 폭염, 올해는 그 피해가 심각합니다. 폭우에는 가뭄이, 폭염에는 겨울이 떠오릅니다. 아무래도 큰 그릇을 준비해야 할까 봅니다.
‘폭우와 폭염을 가둘 수 있는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