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물그릇이 필요해. 20230811
“두 상자가 필요해.”
내 말을 들은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곧이어 아내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오래 두면 빨리 상해요.”
“그럴지도 모르지.”
아내와 아들은 휴일을 맞아 생활필수품을 사려고 마트에 가려는 중입니다.
내가 왜 평소보다 물을 두 곱절이나 주문했을까요. 요즘 불볕더위가 심합니다. 평소보다 물을 마시는 양이나 횟수가 늘었습니다. 아무래도 다음 구매 때까지는 모자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더구나 무거운 물건이고 보니 마트에서 집까지 들고 오기는 무리라는 여겨집니다. 아들이 차를 가지고 가기에 나온 말입니다. 아내의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아서 수긍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평소의 생각은 물그릇이 크면 좋겠다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번 장마에 기록적인 폭우가 있었습니다. 비해 짧은 시간에 예년에 비해 네 배는 많은 양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이번 폭우로 인해 사망자는 수십 명에 이르렀고 13개 지자체가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기후 온난화로 하늘로 올라간 막대한 수증기는 장마전선과 저기압을 만나 상상을 초월한 폭우로 돌변합니다. 이 때문에 지구촌 곳곳이 물난리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 포럼은 앞으로 십 년간 인류를 위협할 십 대 위험 요소 중 상위 세 개를 모두 기후 위험 요소로 전망합니다. 예전부터 ‘치산치수’의 중요성을 말해왔지만 이제 나라마다 치수는 국가안보의 핵심이 됐습니다. 이제까지의 물 배분 중심에서 댐과 같은 물그릇의 확충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번 폭우의 위험을 돌아보면 물그릇의 중요성은 증명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목적 댐은 집중호우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핵심 시설이 되었습니다. 홍수 조절의 구십 퍼센트를 담당합니다. 댐뿐만 아닙니다. 사 대 강의 정비에 따른 소하천의 관리도 중요합니다. 그동안 말이 많았던 사 대 강의 정비는 환경단체의 푸념에도 불구하고 홍수와 가뭄을 관리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결과를 볼 때 나머지 강과 소하천의 정비도 필요합니다.
물그릇이 필요합니다. 다목적 댐을 더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홍수에 물을 가둘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합니다. 폭우에 불어난 물을 일시에 강으로 흘려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장마철이면 저지대는 빗물의 유입으로 침수를 반복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시에 다목적 댐을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신 땅속에 큰 저장고를 만들어야 합니다. 갑자기 불어나는 물에 도시가 잠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배수펌프로는 용량의 한계가 있으므로 지하 저수조를 만들면 홍수와 가뭄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이 물을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세계 몇몇 나라에는 빗물 배수시설인 지하저수조가 있습니다. 그중 일본 사마타 현에 있는 시설은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지하신전이라는 별명까지 있습니다. 도쿄가 침수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에 힘입어 양천구에 빗물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해마다 겪는 침수에서 벗어났습니다. 이후 몇 개의 저수조를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정치 논리에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여러 곳의 침수를 겪으면서 다시 논의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수해 방지를 위해 물그릇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곳에도 눈을 돌려야 합니다.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를 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가뭄과 홍수, 태풍, 폭설, 지진…….
남부지방은 장마 이전까지 한동안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섬의 경우는 식수 부족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동원되고 있습니다. 섬에도 큰 물그릇이 필요합니다.
임진강에 군남댐이 있습니다. 북한이 홍수기에 언제 황강댐의 수문을 열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군남댐의 목적은 이 지역의 홍수의 피해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황강댐의 급작스러운 수문 개방에 물의 흐름을 조절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시설물들을 통해 가뭄과 홍수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폭우의 피해가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어 제6호 태풍 카눈이 우리나라에 상륙했습니다. 비바람으로 침수와 산사태의 피해가 엎치고 덮친 격이 되었습니다. 날로 정도를 더해가는 재난에 대비해 물그릇을 키울 때입니다. 아울러 모든 재난에 대비해서 한 시설을 만들고 항시 점검해야겠습니다.
현관문이 열립니다. 내가 아내의 말에 수긍은 했지만, 아들이 물 두 상자를 가져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