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내 일상의 피서 20230822
말복이 지났습니다.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습니다. 절기가 절기인 만큼 더위가 한풀 꺾일 것 같은데 생각과 달리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올해는 유난히 긴 장마와 폭우, 폭염에 이어 태풍까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견디기 힘들 정도의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줬습니다. 이제는 그만했으면 좋으련만 폭염은 꼬리가 깁니다.
새벽에는 견딜 만한데 오늘은 잠에서 깨자, 온몸이 불덩이입니다. 아침을 먹자 더 달아오릅니다. 아내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혼자라도 더위를 피할 생각으로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이라고는 늘 가는 곳입니다. 도서관, 복지관, 평생학습관, 좀 더 보탠다면 책방 정도입니다.
셔틀버스를 탔습니다. 복지관으로 향합니다. 늦가을처럼 선선한 공기가 차 안에 감돕니다. 새로운 손님이 탔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눈인사만 했습니다. 머뭇머뭇 눈치를 보며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습니다. 그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입니다. 안면은 있지만 특별히 말을 나눈 일은 없습니다. 전에 커피를 한잔 얻어 마셨습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는 무인 찻집이 있습니다. 주민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른 봄입니다. 셔틀버스를 타려다가 놓치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가 뭣해서 찻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노트북을 펼치고 글쓰기에 몰두하는데 한 사람이 커피를 불쑥 내밉니다.
“커피 좋아하시지요? 두 잔을 뽑았는데 한 잔 드시지요.”
무인 자판기입니다. 두 잔을 뽑은 이유가 있습니다. 앞사람의 기기 조작이 서툴렀나 봅니다. 돈은 지불했는데 컵을 뽑지 못했나 봅니다.
“커피가 나왔는데 그냥 마시면 남의 것을 횡령하는 것 같아서…….”
남의 것으로 선심을 쓰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잠시 머뭇거리다 받아들였습니다.
차에서 내려 그가 앞서 복지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뒤에서 보니 처음 방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곳저곳을 살피고 머뭇거립니다. 안내 코너에서 무엇을 물어보려는 듯 서성이지만,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 보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내 할 일이 미루어집니다. 이따가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 말을 걸어야겠습니다.
요즘은 노인복지관이 방학 기간입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전 같지 않습니다. 이층 휴게실로 올라갔습니다. 자리가 텅 비어있습니다. 혼자 텔레비전의 화면이 움직입니다. 금방 누군가 왔다 간 흔적입니다.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오늘은 어쩌면 독방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입니다. 생각한 대로입니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서너 사람이 잠시 머물렀을 뿐 나 혼자 자리를 지켰습니다. 생각을 방해받을 일이 없어 오로지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옆 건물에 있는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세 대의 컴퓨터 중 왼쪽의 것은 내 전용이나 다름없습니다. 직원들은 내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드무니 내가 한 자리를 차지해도 지장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특별히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쓴 글을 교정하는 작업입니다. 맞춤법 검사기를 불러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교정합니다. 컴퓨터의 화면이 넓어 내 눈을 편하게 합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지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 보니 남과 접촉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가끔은 바둑을 두고 싶고, 대화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마땅히 상대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이 나를 홀로 있게 하는지 모릅니다. 무엇인가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인지 모르겠습니다.
오후 한 시 셔틀버스를 생략하고 세 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앞의 버스는 내 집 앞에 서지만 세 시에 출발하는 차는 이십여 분의 거리에 있는 지하철역 앞에 섭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 더운 땡볕에 걸어간다는 게 마음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추위와 더위를 견디는 것도 생활의 일부라고 여깁니다.
올해부터는 비밀무기 하나가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열기가 훅 코로 달라붙습니다. 해가 이글거립니다.
‘쉬엄쉬엄 가야지’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건물은 인천 시민이라면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름이 스타트 업(start up)입니다. 봄부터 눈여겨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용해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넓고 시원한 공간에는 안락의자와 책상이 군데군데 자리했습니다.
‘와! 여기야.’
문서를 작성할 자리가 있습니다.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전깃줄을 꽂았습니다. 와이파이를 연결했습니다. 다시 내 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집을 향해 퇴근합니다. 퇴직 후 처음으로 시간을 맞춰보는 퇴근입니다. 오후 여섯 시입니다. 내일은 비가 내린답니다. 미지근한 바람이 내 몸을 감쌉니다. 밤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요.
다람쥐 쳇바퀴 도는 피서입니다. 오늘은 피서지를 하나 추가했습니다. 내일도 그 사람을 만날지 모르겠습니다.
“같이 갈까요, 조용한 피서지를 하나 알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