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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165. 통학로 20230825

by 지금은

‘허공에 매달려 열네 시간을 떨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것도 아니고, 열기구에 탄 것도 아니고, 행글라이더로 하늘은 나는 것도 아니고…….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산허리의 쇠줄에 아이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곳이 있었나? 순간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 예측이 맞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잠시 텔레비전에서 자막과 함께 아나운서의 설명이 지나갔습니다. 말이 열네 시간이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정전으로 단지 몇십 분 엘리베이터에 갇혀있었던 것만으로도 가슴이 오그라드는 심정이었는데 아이들이 그 시간 내내 견딘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헬리콥터에 의해 구조를 하려고 했지만 바람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고 밤을 지낸 후에야 구조를 할 수 있었다니 그들의 심정이나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산세가 워낙 심하다 보니 다리를 대신하는 이런 열악한 시설이 여러 군데 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통학로가 또 있군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페루의 어느 산간지대에서 케이블에 매달려 통학하는 믿기 어려운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고리 하나에 의지하여 천 길 낭떠러지 위를 통과합니다. 두려운 마음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아이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입니다. 나와 친구들은 가끔 불평했습니다.

“우리 집이 학교 앞에 있으면 좋은데.”

먼 곳에서 학교에 다니는 친구 중에는 두 시간이나 걸어야 했습니다. 고개를 넘고 골짜기를 돌고 돌며 물을 건너고 산모퉁이를 빠져나옵니다. 인적이 드문 산골은 낮에도 을씨년스러웠습니다.

나는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세계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시청합니다. 보여주는 곳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도 있나 하고 눈을 집중시킬 수 있는 특종 거리입니다. 남미 어느 호수에는 수상학교가 있습니다. 작은 배를 저어 학교에 갑니다. 수상가옥에 사는 어린이는 육지 학교에 가기 위해 역시 배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합니다. 물이 이들의 놀이터입니다. 날씨라도 사나운 날이면 어떻게 될까요. 가끔은 위험을 무릅쓰고 무서움을 견뎌야 할 때도 있습니다.

몇 년 전 기억입니다. ‘차마고도’가 떠오릅니다. 티베트인지 네팔인지 확실히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 정도로 험한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지에는 학교가 없어서 어릴 때부터 멀리 떨어진 학교에 아이들을 유학시킵니다. 겨울방학이 끝나갑니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개학날을 앞두고 보호자와 아이들이 길을 나섰습니다. 이른 봄철이지만 산골 날씨는 매섭습니다. 이런 이유로 산과 계곡도 날카로움을 드러냅니다. 준비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자동차도 수레도 다닐 수 없는 험난한 길입니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려면 몇몇 날이 걸릴지 기약을 할 수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빠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원래 길은 없습니다. 발이 닿는 곳이 길입니다. 바위산을 넘고 계곡을 지나고 산등성이를 타고 물을 건넙니다. 빨리 걸어도 사흘이나 걸립니다.

학부모와 아이들은 집을 나서면서 고난의 연속입니다. 짐을 지고 아이를 등에 업었습니다.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산과 계곡을 번갈아 가며 갑니다. 강을 몇 번 넘었는지 모릅니다. 건너는 동안 부모의 몸이 얼음물에 반쯤이나 잠겼습니다. 영하 몇십 도의 추위에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중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습니다. 자식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옹기종기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몸을 서로 의지한 채 담요 한 장에 몸을 맡깁니다. 할아버지의 말입니다.

“이 짓도 오래기까지만 일지, 내년까지만 일지.”

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무사히 학교에 이르렀습니다. 여름 방학을 기약하며 학부모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배움이란 무엇일까?’

이 밖에도 세계의 오지에 사는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정글 속에서 사는 아이들은 수풀을 헤치고 갑니다.

세계인들의 삶이 제각기 다르듯 등하교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명과 과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자연을 완전 정복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생각과 가능하다고 해도 먼 훗날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나라임에도 세대 차이가 납니다. 요즘의 우리나라의 등하교 모습을 봅니다. 아직도 먼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흔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경우 집과 학교의 거리가 짧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몇 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심지어 학교가 아파트와 한 울타리에 있는 일도 있습니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학부모가 동행하기도 하고 자가용으로 등하교시키기도 합니다. 시골의 경우는 학생 수의 감소로 인해 이웃 학교와 통합되면서 셔틀버스를 운영합니다.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라의 경제 규모와 국민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불행은 남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불평등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나보다 부유한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주눅이 들 때가 있지만 오늘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 부지런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는 것, 태어난 시대가 나쁘지 않다는 것 등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순리대로 살려는 아내와 아들에게도 같은 생각입니다.

개학이 다음 주입니다. 잠시 학교에 가는 어린이들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계의 등하굣길이 안전하기를 바라며, 모든 아이에게 좋은 학교생활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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