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빵이었어요. 20230826
“입맛이 없어서.”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 먹으면 될 텐데.’
막 입에서 맴도는 순간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도 같은 말씀을 곧잘 하셨습니다. 이럴 때마다 자식들은 할머니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신경 썼습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입맛을 돌릴 수 있는 것을 사 왔습니다. 굴비, 새우젓, 멸치……
내일 시장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기에 국물이 있는 식품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탕 어떠냐며, 설렁탕은, 추어탕은, 미역국은……. 생각나는 대로 주섬주섬 나열합니다. 별말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는 밥맛이 없다고 하기에 좋아하는 추어탕을 함께 먹었습니다. 저번 주에는 막국수도 먹었습니다.
“갑시다.”
“뭘?”
“어제 장을 보러 가기로 했잖아요.”
배낭을 메고 나섰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몸에 달라붙은 더위가 한 꺼풀 벗겨진 느낌입니다. 집 안에 있을 때와는 달리 바람이 몸을 휘감습니다. 햇볕에 나섰지만 따가움이 한결 순해졌습니다. 방 안에서 덥다고 느껴질 때는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와는 달리 아내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선풍기 바람을 쐬지만 나는 자연 바람만 못하다는 것을 압니다. 인공바람을 좋아하지 않기에 땀을 흘리면서도 선풍기를 피하고 부채질도 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장을 보는 동안 이것저것 샀지만, 탕이나 국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상합니다. 본래의 목적은 잊은 채 다른 것에만 눈을 돌립니다. 통닭을 샀습니다. 배를 집었다 놓았습니다. 싱싱하지 않습니다. 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갑니다.
“화장실이 급하네.”
나는 먼저 계산대를 빠져나왔습니다.
배낭의 짐이 꾸려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국물 거리를 빠뜨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물었습니다. 내가 멘 가방을 두드리며 곰탕이라는 말을 합니다.
나는 어릴 때 음식을 가리는 게 많았습니다. 할머니보다 더 입이 짧았습니다. 식구들이 내 건강 때문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식구들의 걱정을 모르는 듯 늘 먹는 게 부실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비위가 약한 나는 툭하면 배앓이했습니다. 먹고 나서 배가 아프기보다는 안 먹고 배가 아프지 않은 편이 낫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런 현상은 젊은 시절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불규칙한 식사에 애를 먹었습니다. 긴 시간의 출퇴근은 나를 늘 긴장 속에 살게 했습니다. 아내를 만나서도 이어졌습니다.
내 속이 점차 편해진 것은 집에서 직장이 가까워지고부터입니다. 규칙적인 식사와 배탈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입니다. 아내도 내 의견에 함께했습니다. 약보다는 음식 조절에 힘썼습니다. 점차 정상을 찾았습니다.
‘입맛이 없어서.’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이십여 년 전부터는 머릿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맨밥을 먹어도 맛이 있습니다. 식사 시간이 길어진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음식의 맛을 느낍니다. 되도록 자연식을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소금 외의 조미료는 의도적으로 피합니다.
아내는 장을 보고 오는 중 덥고, 다리가 아프다면 잠시 쉬어가자고 했습니다. 공원을 가로질러 오다 나무 그늘에 앉았습니다. 쉬는 동안 배낭 속의 통닭 생각이 납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말을 꺼낼까 했는데 아내가 일어섭니다.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배낭을 벗깁니다. 곧 빵을 꺼냈습니다. 숨이 죽지 않았습니다.
“음식은 따끈할 때 먹어야 제맛이지, 찢어먹어요.”
“웬 빵?”
내가 화장실에 가는 시간과 빵이 구워져 나오는 시간과 겹쳤나 봅니다.
갓 지어낸 밥처럼 따끈합니다. 식빵이 어느새 아내의 입에서 놀고 있습니다. 쫄깃쫄깃하고 부드럽답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차가운 커피와 따끈한 빵입니다. 무더위에도 늘 더운 커피인데 오늘은 따끈한 빵과 구색이 맞나 봅니다.
“그러게, 더위에도 음식은 뜨거워야 해.”
무심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냉커피의 느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얼음을 입에서 굴립니다. 얼음 맛도 쫄깃하고 부드럽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커피 맛도 좋습니다.
‘뭐, 뭐, 요즘은 워낙 불볕더위니까.’
아내는 두 덩어리나 먹었습니다.
“아, 살 것 같네!”
입맛이 잠시 빵 속에 숨어있던 게 아닐까 합니다. 곧 맛이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