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모임이 있는 날 20230828
“오기는 하는 거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눈이 자꾸만 감기네.”
“뭐, 벌써 죽으려고.”
아침 일찍 초등학교 동창생이 전화했습니다. 자주 만나다 보니 농담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삼십여 년 동안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친구들입니다. 느지막이 다시 만났지만, 어느새 그만큼의 기간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십여 명이나 되던 모임 친구가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 떠나고 이제는 여덟 명만 남았습니다. 먼 곳으로 이사를 해서, 몸이 불편해서, 세상을 달리해서, 각각의 이유가 있습니다.
어젯밤 글쓰기 모임에서 밤을 새워 글을 썼습니다. 젊은이들 틈에 끼어 피곤한 줄도 모르고 한 편의 글을 완성했습니다. 주관하는 단체에서 책을 만들어 주겠답니다. 글을 쓴 사람들은 아마추어입니다. 단지 좋아한다는 생각에서 모였습니다.
피곤하지만 동창 모임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밤을 새우고 와서 뭘 또 가요, 쉬어야지.”
아내의 걱정입니다. 하지만 총무의 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 명이나 빠지게 되었다며 나까지 빠지면 되겠느냐며 반강제의 말투입니다. 반은 애교가 섞였습니다.
이번 모임의 장소는 멀어서 아침을 먹자마자 출발했습니다. 시간을 어림해 보니 점심 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가자마자 점심을 먹게 생겼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시작 전 이십 분입니다. 수목원을 둘러보기로 예정이 되었습니다.
“점심을 먼저 먹을 거야, 아니면 수목원을 둘러보고 먹을 거야. 두 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친구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습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너는, 너는…….”
총무 친구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모두 점심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결국 수목원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입장을 해서 삼십여 분 이곳저곳 둘러볼 때입니다.
“에이, 점심을 먼저 먹고 들어와야 하는데, 힘이 빠져서 원.”
친구가 은근히 불만을 표시합니다. 나머지 친구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한 귀로 들었는지 모릅니다. 조금 걷다가 다시 같은 말을 합니다. 이런 데를 오려면 뭔가 먹을 것을 가지고 와야 한답니다. 친구들이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먹는 것보다는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맛집이나 맛있는 음식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뭘, 먹을 거야.”
“아무거나.”
만날 때마다 첫 번 메뉴는 ‘아무거나’입니다. 결국 우리 눈에 가까이 보이는 음식집 메뉴가 선정됩니다.
사람은 어려운 처지에 이르러야 성격을 알 수 있다 합니다. 이에 맞는 일이 곧 일어났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뭐 가져온 거라도 있어?”
우리가 모두 빈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말입니다. 몸에 지닌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입장 후 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입니다. 오늘도 무더운 날씨입니다. 쉼터에 앉았습니다. 푸념하던 친구가 작은 배낭을 내려놓았습니다. 종이컵을 꺼냅니다. 생수병을 꺼냅니다. 물을 한 컵씩 돌렸습니다. 꿀맛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자그마한 과자봉지도 하나 꺼냈습니다. 힐끗 배낭 안을 보니 일회용 커피가 있습니다. 산이나 들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니, 비상식량 겸 간식거리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입이 짧습니다. 식사량이 적습니다. 대신 이것저것 자주 먹는다고 합니다.
되짚어 보니 그는 만날 때부터 배가 고팠습니다. 생각이 무딘 우리는 잠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밖에서 만날 때는 나도 무언가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야외에서 만나는 여자들의 모임이 떠올랐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모이는 곳에는 남자들과는 달리 가방을 풀면 먹을 것이 한 상 차려집니다. 굳이 음식점에 가지 않아도 한 끼 배를 채우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씨 착한 친구의 짜증을 오랜만에 경험했습니다. 수목원을 나오자, 평소대로 가장 가까이 보이는 음식점으로 입장했습니다.
“오늘은 한 그릇 비웠네.”
“맞아, 오랜만에 배가 고팠나 보군.”
옆의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도 말했습니다. 다른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어리광을 부려도 좋다고 등을 두드리며 아이 달래듯 말했습니다.
“짜증 부리지 말고 배고프면 나에게 우유 사달라고 그래.”
“미친놈”
“인마, 나는 ‘미’는 절대 안친다. ‘솔’이나 ‘시’는 몰라도
어둠이 내릴 때까지 서너 시간 싸우듯 잡담을 하며 시시덕거렸습니다. 귀가 좋지 않은 친구가 있으니 배려해야 했습니다. 환승역이 가까워지자 서로 손을 맞잡으며 말을 건넸습니다.
“알지, 죽지 않고 만나는 거야.”
“맞아, 내가 명하노라, 이렇게 늙어가도 괜찮다고.”